퇴근시간이 지나,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검사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의자를 겨우 붙잡고 쪼그려 앉았다.
어깨가 들썩였지만, 손끝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붙잡히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이 너랑 있으면 불편해 해. 불편해 해. 불편해 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면담기간이었다.
상사는 그녀에게 면담 내용을 적어 제출하라고 했고,
그녀는 그동안 일하면서 느낀 문제점과 개선안을 꼼꼼히 기록했다.
평소 그녀는 하루 종일 검사실에서 환자를 맞았다.
환자 입장에서는, 경력 많고 기술 뛰어난 그녀에게 세심한 검사를 받을 수 있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년 넘게 쌓인 경험과 시야가 한 가지 검사에만 묶여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반면, 5년 차도 채 안 된 직원들은 부서 협력이나 새로운 조율 업무를 맡고 있었다.
관리자는 늘 정해진 자리에서 동일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경력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력자의 역량은 제한되고, 후배들의 성장 기회조차 막는 결과가 되고 있었다.
그녀는 이 불균형이 언제나 거꾸로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일지에 적어 내려갔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직원들을 단순 업무만 맡기는 것은 효율에 떨어집니다.
그들을 단순업무에만 묶어두기보다, 타부서와 협력하여 성장할 수 있는 업무로 배치하는 것이 부서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일지를 읽은 상사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너 이렇게 적어오면 내가 팀장한테 뭐가 되냐.”
상사는 그녀의 개선안을 자신의 업무 방식에 대한 지적처럼 받아들였다.
예상치 못한 상사의 반응에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고 있다고 팀장님이 모르고 계신 것은 아닐거에요.
듣기 싫은 말을 피하기보다, 앞으로 당당한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상사는 면담일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알겠다. 이제 내가 할 말을 할게.
너는 일머리도 좋고 성실해.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너를 불편해해.
너랑 일하고 나면 싫어해.
너가 알고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차갑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2년 전, 그녀는 7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녀의 유별난 꼼꼼함과 직설적인 지적 때문에 팀원들은 불편함을 호소했고,
결국 그녀는 다른 업무로 옮겨졌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이 더 마음아팠다.
'내가 사람을 보지 않고 일만 봤구나.'
그 이후, 그녀는 달라지려 애썼다.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편하게 이름을 부르던 어린 후배들에게조차 존칭을 쓰며 정성을 다했다.
차갑던 호랑이 같은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근에 저한테서 교육받은 직원이 그렇게 말한 건가요?”
“아니, 걔랑은 면담 안 했다.”
“그럼 최근에 같이 일한 사람도 없는데, 어떤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상사는 잠시 멈추더니, 무심하게 답했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 니앙스가 그랬다.”
말이 멈춘 그녀.
'니앙스...
이것은 상사의 의견일까,
다른 이들의 의견일까.
나는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의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숨이 가빠오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조용히 말했다.
“지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그렇게 느끼신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확히 누구의 무엇이 잘못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말씀하시는거라면 저는 억울합니다.
제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제일 잘 아시잖아요.”
상사는 그녀의 반응이 불편한 듯 말했다.
“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한테 더 무슨 말을 하겠냐.
나는 그저 도움될까 해서 한 말이었다. 그만 가자.”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를 남겨둔 채 상사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그녀는 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아직..'
검은 검사실 안, 그녀를 따라다니는 비뚤빼뚤한 꼬리표.
그 무게에 눌려, 공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미처 찡그리지도 못한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사람들이 너랑 있으면… 불편해 해."
메아리처럼, 그녀 안에 계속 울렸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