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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한 발걸음(2편)

by NINA

-지난 글(삐뚤빼뚤한 꼬리표)에서 이어집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어두운 사무실을 빠져나와 차를 몰았다. 평소보다 어두운 하늘 위로 폭우가 쏟아지고,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차선은 흐릿했고,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방향을 잃은 마음을 안고,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이끄는 대로 운전했다.


몇 번 길을 잘못 들다가 겨우 집에 도착했다.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생각을 멈추고 싶어 곧장 침대에 몸을 눕혔다. 꿈 속에서도 상사의 말이 계속 울렸다. 깨어나고 싶었지만, 꿈속에서조차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다시 달리듯 꿈을 이어갔다.


무언가를 쫓고,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쉼 없이 뛰다가 결국 잠에서 깼다.

새벽 네 시, 창 밖에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 클래스는 취소될수도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오자, 막 잠에서 깬 강아지가 기지개를 켜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으응... 안녕...”


유난히 기운이 없어보이는 그녀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강아지는 그녀의 다리를 핥아댔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강아지를 바라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구나.'


커피를 내리고 한 모금 마시며 기운이 돌았다. 사실 그날은 친구와 러닝클래스에 참여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러닝을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


6시가 되자 쉴새 없이 내리던 비가 잦아들었다.


'7시에는 나가야겠지.'


외출준비를 위해 욕실에 들어서자, 팅팅 부은 눈의 낯선 여자가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는 잠시 자신을 바라보다 깊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운동장에 도착하자,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햇살이 쏟아졌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친구가 반갑게 외쳤다.


“앗! 감독님이다!”


감독님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감독님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작고 마르셨네...

그런데 다리는 어쩜 저렇게 가늘고 매끈하지.

저 다리로 선수 생활을 하셨다니...'


그녀에게 종아리는 오래된 콤플렉스였다.

원래부터 남들보다 튼실했지만, 최근 달리기를 시작한 뒤 더 굵어진 것 같아 걱정이 늘었다.

그런데 전문 선수 출신인 감독님의 종아리는 알 하나 없이 매끈하고 가늘기만 했다.


'저 다리로 어떻게 그렇게 뛰셨을까?'


수업이 시작되자, 모두가 감독님의 동작을 따라 했다.

그녀 역시 무거운 몸을 이끌며 어설프게 자세를 취했다.


감독은 사람들의 달리기 자세를 하나하나 살피다 그녀 앞에 멈춰서 소리쳤다.


“왜 자꾸 발을 뒤로만 차? 다리를 들어!”


순간 괜히 화가 치밀었다.


'이대로도 잘 달리고 있는데... 왜 자꾸 다리를 들라시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지시대로 다리를 들어 올렸다.

뒤로만 차던 동작은 종아리에만 힘을 주었지만,

앞으로 당겨오는 동작은 허벅지와 엉덩이 같은 큰 근육이 쓰였다.

결국 감독님의 말은 더 큰 근육을 활용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었다.


'아, 이거였구나. 내 종아리가 굵어진 이유는 작은 근육만 과하게 사용했기 때문이구나.'


교정된 자세로 다시 달려보니, 비로소 몸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와 밥을 먹으며, 그녀는 직장에서 받은 평가와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야, 니가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잖아. 충분히 노력했어. 다른 사람들 말 신경쓰지마.”


그제야 그녀는 숨이 조금씩 쉬어지는걸 느꼈다.


'맞아.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어.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이 눈을 감고 있었던 거야.'




다음 날이 되어 출근길에 계단을 오르며 다리를 올리던 그녀는 감독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발을 뒤로 차지말고 다리를 앞으로 올려!"


'나는 늘 뒤로만 차고 있었지.

종아리만 쓰며 뛰던 나.

그래서 종아리가 굵어진 거였어.

마음도 그랬구나.

늘 과거에만 집착하니 힘들었던 거야.


물론 종아리를 안쓰고 살수도 없고

과거를 신경안쓰고 살수는 없지.

하지만 거기에 힘을 다 쏟아서는 안 돼.


주변을 신경 쓰느라

스스로를 묶어둘 필요 없어.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그 자체로 충분했어.’


월든의 글이 생각났다.


"자기 삶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씩씩하게 맞아들이고 또 살아나가라.

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그리 나쁜 게 아니다."


소로우의 말처럼

단 한차례 내린 부드러운 비가

풀을 푸르게 만들듯,

좋은 생각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됐어. 삐뚤게 봐도 상관없어.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내 길을 갈거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거야!'


그녀의 두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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