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흉터가 그린 초상화

by NINA

삐뚤빼뚤한 선 하나로

누군가는 살아남았음을 증명한다.


흉터.

어떤 이는 그 흔적을 가슴에,

또 어떤 이는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일부를 잘라내고,

누군가는 한쪽 전체를 덜어낸다.

덜어낸 자리를 보형물로 채우는 이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빈 가슴과 긴 수술 자국을 그대로 품고 살아간다.


유방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크고 작음을 떠나, 그것을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하필이면 눈길이 쉽게 닿는 자리에 있어

매일같이 사라진 자리를 확인하게 된다.

차라리 등이나 엉덩이에 난 흉터라면 모른 척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삐뚤빼뚤해진 가슴.

다른 방향으로 숨어버린 유두.

혹은 훤히 드러난 흉곽 위에 길게 남은 자국.

그 앞에서 남은 한쪽 가슴마저 낯설어 보인다.


유방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 성과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그 사실이 ‘쉬운 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술과 항암을 거치는 동안, 누구나 비슷한 물음 앞에 선다.


'내가 이 과정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

‘수술 후의 내 몸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매년 돌아오는 검진 앞에서

다시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


'혹시 전이가 된 건 아닐까.'


나는 매일 병원에서 그 여정을 지나온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항암을 막 끝냈고,

또 어떤 이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검진을 받는다.


겉모습만 보면 다른 환자들과 다르지 않아서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다.

더더군다나 표정마저 밝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결심과 싸움 끝에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니.


나는 그 강인함을 엄마에게서 먼저 배웠다.


7년 전, 엄마 역시 한쪽 가슴을 덜어냈다.

암이 유두 근처에 있어 부분 절제가 아닌 전체 절제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수술 후 복원술을 권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마, 뭐하러 하노. 굳이 안 해도 된다.

내 꺼는 작아가꼬 티도 잘 안 나고,

수술도 오래 걸린다고 안하나

내는 싫다.”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샤워할 때마다 얼마나 속상하실까.


엄마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한쪽 가슴이 허전하다며 작은 패드를 구해달라고 했다.

샤워 후에는 그것을 꼼꼼히 빨아 햇볕에 널어 두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 네 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엄마는 그렇게 유방암의 흉터를 삶의 일부로 이어갔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너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야?”


나는 언제나 대답한다.


엄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멈추지 않고 이어간 사람.

나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의 모습에서 같은 강함을 본다.


삐뚤빼뚤.

그들의 가슴에 남은 선은 상처가 아니다.

그 흔적은, 누구보다 강인한 삶을 증명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초상화였다.




흉터는 다른 말로 아문 흔적입니다.
아물었다는 건 우리가 자라났다는 증거이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바래봅니다.

누군가의 상실을 바라볼 때도,

내 안의 흉터를 마주할 때도

그 무게를 두려움으로만 느끼지 않기를.


우리는 모두 찢어지고,

아문 흔적 위로 다시 살아가며

이 과정 속에서 더 단단하고 더 아름다워지고 있어요.


삐뚤빼뚤한 그 선 위에서

지금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