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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두드림이 변화의 전장으로 이어진다.

by NINA

그때 나는 벌게진 얼굴로 숨이 넘어갈 듯 헥헥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8킬로를 막 지난 지점에서

눈앞에 우뚝 솟은 깔딱 고개가 나타났다.


지금 멈추면 뛰어 올라갈 수 없음을 알기에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발걸음을 이었다.


앞을 보고 뛰어볼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인다.

오르막 정상을 바라보며 뛰다 보면

'아... 아직도 저만큼 남았네..'

'아... 다리가 무거운데 어떡하지..'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금세 지쳐 나가떨어져버릴 게뻔했다.


내 발밑만 보며 뛰었다.

그래. 뛰다 보면 도착하겠지.


탁탁탁탁.

탁탁탁탁.


땅을 두드리는 내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갑자기 누군가의 노크 소리처럼 느껴졌다.


탁탁탁탁

똑똑똑똑

똑똑똑똑


콘크리트를 뚫고 피어난 길가 꽃들이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겨울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그 아이들은 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땅속에서 두드림을 이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땅 위로 피어오른 모습이

어찌나 귀하고 아름답던지

숨이 넘어갈 듯 헥헥거리는 와중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

지금의 나 역시 무언가를 깨기 위해 두드리고 있었다.

탁탁탁탁.

첫걸음은 가벼웠고

지금은 숨이 넘어갈 거 같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은

오늘의 나

익숙해져 버린 나라는 땅

그걸 깨고 피어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손자병법에서는 정복자를 경직과 익숙함을 넘어선 자라 말한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요령'이라고 하는 것을 터득하곤 했다.

이전에 했던 방법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별생각 없이 자주 반복했고

그것은 이내 습관이 되고 어느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그 굳어짐은 곧 깨어짐으로 이어졌다.


손자병법이 경계한 것이 바로 이런 멈춘 익숙함이었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사고, 굳어버린 몸, 무뎌진 감각.


최근에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나는 멈춘 사람이 아닐까.
늘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같은 다짐을 하며,
닮은 글을 써오지 않았나.

이렇게 같은 걸 반복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포시 찌그러져 있던 나는

피어난 꽃들을 보고 깨달았다.


수없는 두드림이 이 아이들을 피어나게 했다.

들이 했던 두드림은 늘 같은 것 같지만

매번 더 깊어진 두드림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 땅이 뚫린 것을 보면 말이다.


그저 반복하고 있다 생각한 나의 생각과 행동.

그건 무뎌지고 굳어진 게 아닌

더 나아지기 위해 이어가는 과정

즉, 살아있는 익숙함이었다.


한 번 더해진 생각은

한 뼘 더 깊어졌고

한 번 더 알아차린 허약함은

한 뼘 더 단단하게 만들곤 했으니 말이다.


탁탁탁탁.

탁탁탁탁.


헥헥거려도 계속 내디뎌본다.

한층 깊어진 익숙함이

저어기 새로운 나를 피어내고 있으니.


물은 땅의 형태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든다.
용병은 적에 따라
적합한 방법으로 승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용병에는 고정된 형태가 없고
물도 일정한 형상이 없는 것이다.
적에 따라 능숙하게 대응해서 승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전쟁의 신이라고 한다.
이것은 오행은 항상 강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강하고 약한 이치가 있고
사계절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하며
해는 짧을 때와 길 때가 있고
달은 찼다가 저무는 이치가 있는 것과 같다.
손자병법(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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