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시작노트 13화

그만 깻잎을 보고 말았네

이야기와 시

by 시숨


저녁 식사 자리, 아내가 깜빡 잊었다며

씻어 놓은 깻잎을 냉장고에서 꺼내 온다.

싱싱한 깻잎을 쌈장에 찍어 먹으려다

그만 깻잎을 바라보고 말았다.


깻잎 끝의 톱니 같은 생기부터 시작해서,

가운데 대로 같은 줄기, 꼭 길들이 이어진

마을 같은 한 잎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깻잎을 바라보는 나를 보고 아내는

아무래도 혀를 끌끌 차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 발견의 순간이

주는 희열은 일상에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얻게 된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놓치기 싫었다. 밥을 먹으면서 내내

생각하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써 내려간다.


잠깐 마주친 아내의 눈길에서

‘저 돈 안 되는 인간……’이라고 하는

표정이 읽히긴 했지만, 꿋꿋이 쓴다.


한 편의 시는 그렇게 시련을

이겨내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던가.





깻잎


입으로 들어가기 전

깻잎은 털이 소복한 줄기 달린

손바닥 크기의 마을 한장


시작과 끝을 한 줄로 시원하게

중앙으로 관통하는 대로가 있고

작은 길들이 다시

좌우로 뻗은 지도 한장


길들 사이 사이 초록빛 고랑 위로

생명과 생명들이 긴밀하게 오고가며

맥들이 싱싱하게 숨쉬며

들썩이는 곳


살짝 뒤집으면 보이는

마을 아래는

살짝 옅은 색으로

드러난 마을의 줄기들


이제 정교한 한 잎의 세상이

한 입으로 들어선다


마을의 생기

잘게 부수어져

태양과 흙으로 일구어진

녹색 땔감이 되어

어느 새로운 생명 속을

태우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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