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그다지 오랜 유학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간간이 찾아오는 슬럼프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실 슬럼프라기 보단 공부하기 싫은데 내 나라가 아니라 답답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중국음식과 술이었다.
학생이라 백주는 마실 수 없었고, 저렴하디 저렴한 맥주를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여전히 저렴한 맥주를 보면서, 한국에 파는 중국맥주가 너무하게 느껴졌다.
중국 친구들과는 놀러 나가거나, 음식문화를 즐기는 일이 많았고
한국 친구들과는 중국살이에 대한 회포를 풀기라도 하는 듯 술을 자주 마셨었다.
그러다 어느 날 중국친구의 생일이 있어
나포함 딱 두 명만 한국인에 모두가 중국인인 작은 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밑단 깔지 말라는 문화가 바탕이 되어,
누군가가 술을 따라줄 때는 잔이 비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배운 탓에 누가 술을 따라주려고 하면 금방 입에 다 털어버리고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중국은 첨잔이 술문화라고 한다.
술이 남아있어도 그 위로 계속 따라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한국인으로서 있는 잔에 계속 따라 주는 게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계속 따라주면 내가 몇 잔을 마신지도 모를뿐더러, (사실 알 필요는 딱히 없다)
계속 가득 채워지는 맥주잔을 금방이라도 비워버려야 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생일자에게 큰 양동이에 생일주를 타서 먹이는 게 일반이라면(물론 20대만 해당일테다^^)
중국은 계속되는 첨잔에 계속 마시게 만들었다.
결국 그 생일자는 취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었다 ㅋㅋ
중국의 술문화 중 하나는 맥주도 상온으로 두고 마신다.
맥주는 응당 차야지! 했던 생각도
중국에 살다 보니 나도 상온의 맥주를 즐겨마시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 돌아오면서 찬 맥주를 다시 즐기게 되었지만
중국에 다시 가면 미지근한 물도 맥주도 다 괜찮아지는 걸 보면
장소에 따라 내 인격이 변하는 것 같다.
마치 카멜레온 같이 혹은 문어처럼 상황에 따라 확 변하는 인격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한국어 할 때와 중국어 할 때, 영어 할 때와 모두 다른 인격이 나온다.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가장 편한 모습은 아무래도 한국의 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