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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Feb 03. 2024

호주 농장에서 워홀 하는 게 어때서?

단언컨대 최고의 시절이었다.

호주 도시살이는 그렇게 힘들던 것이 시골로 갔다고 다 쉬웠느냐? 그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마음으로 농장을 오긴 했지만 걱정은 많았다. 가끔 뉴스에 보이는 노동착취, 성매매 이외에도 외노자가 일하는 곳, 상황이 열악한 곳으로 편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언어적 난관과 부족한 경험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었다면

시골은 도시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딱 반대였다. 


과일을 따고 농사일을 하면 되었기에 빠지지 않고 농장을 나간다면 먹고살기는 하지만 농장일이기 때문에 몸이 고단했다. 또, 한국 시골처럼 인프라가 좋지 못해 차가 없으면 마트를 가기는 힘들었고 새벽 5시부터 농장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했다. 아무리 모자로 가려도 호주의 강한 햇빛은 가리기 힘들어 새카맣게 타기도 했고, 시골이라 그런지 뱀,벌등 위험한 동물들을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차가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농장에 가면 사는 곳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카풀하는 문화가 성행했다. 처음 농장 갈 때만 고생할 뿐 반을 배정받은 이후엔 집과 농장을 오가는 게 수월했고 마트 가는 것도 카풀을 하면서 같이 가는 문화가 있었다. (보통 차 주인과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새벽 5시에 일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일찍 끝나기에 오후 내내 호주 자연을 만끽하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일이 많으면 1시 보통 오전 12시면 업무를 마쳤다) 뒷마당엔 한국에선 보기 힘든 캥거루,앵무새,토끼등 각종 동물들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농장에선 다양한 인종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등 전 세계인들이 모여있었다. 누구는 영어를 잘하고 누구는 영어를 못하지만 모두가 행복했다. 언어로 일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그만큼 언어에 있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여유로운 상황은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줄고 한 마디씩 느리지만 말해보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가끔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과 얘기하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그날 말하고 싶었던 문장을 다시 한번 써보고 다음엔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게 되면서 영어는 점점 늘었다.


글로벌 친구들이 생겼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외국인 친구를 직접 나서지 않으면 만들기가 어렵다. 농장에서는 같이 고생하고 뙤약볕에 고생을 하다 보니 전우애 같은 것이 생긴다. 농장에서 다양한 친구들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는 경험, 내가 생각한 '외국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일찍 일이 마치다 보니 우리는 자주 파티를 갖었다. 각자 나라의 전통 음식파티를 하기도 하고, 해변에 가서 같이 서핑이나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했다. 피 터지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상하게 누가 얼마를 더 가졌느냐, 나보다 더 낫나 이런 비교는 자연스레 접어졌다.


농장에 오기 전엔 사는 곳이 정말 열악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운이 좋게 농장에서 알게 된 한국인 언니가 좋은 곳을 추천해 주어 호주인 집에서 살게 되었고, 영어사용은 덤,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시골이라 인프라는 안 좋았지만 물가가 저렴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세이브가 가능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농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우리는 아주 자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꼭 그때 그곳에 있는 것처럼 웃음 짓곤 한다. 글을 적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미소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린 장난처럼 할머니가 되어서 틀니를 껴도 그때 그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고 한다.


아직 좋은 날이 많이 올지라도, 호주 시골살이는 내 생에 Top5 안에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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