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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Feb 18. 2024

호주사람, 왜 이렇게나 커피에 진심이세요?

바리스타가 된 워홀러

호주에 온 지 반년이 좀 더 흘렀다. 한국에서 6개월은 눈 깜짝할 시간일지 몰라도 호주에서 6개월은 꽤 긴 것처럼 느껴졌다. 모국이 아닌 나라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마치 신생아처럼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새로운 탓이었다.


첫 도시 멜버른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농장으로 간 지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난 조금 더 단단해졌다. 호주 살이에 조금 더 적응했고 영어가 조금 더 늘었으며 이제 도시로 갈 날이 온 것이라 생각했다. 농장의 시간, 호주 시골살이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좋았지만 아직 도시살이의 욕심을 내려놓지는 못했다.


도시는 어느 나라처럼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호주 도시살이의 성공이 남아있었다.(성공이라 쓴 것이 조금 거창하지만 그저 일자리를 얻어먹고살고 가끔 여가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시골을 정리하고 도시로 이동했다. 다시금 불안감이 이따금씩 느껴졌지만, 그래도 단단해진 나를 보며 성장했음을 느끼곤 했다.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직종은 서비스직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카페 경력 4년 차이기도 했고(물론 알바지만) 커피로 유명하다는 호주에서 나도 당당히 그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 농장에서 영어가 는탓인지 전보다는 수월하게 일자리를 구했다.

바리스타가 된 것이다. 물론 포지션은 올라운더이다.(호주는 커피에 진심이라 그런지 바리스타 포지션이 따로 있었다. 그야말로 커피제조만 하는 포지션이다) 서빙, 커피제조, 주문 등 모든 롤을 다 해내야 되는 포지션이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호주 카페에서 일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일한 경력 4년은 깡그리 0이 되었다. 나는 그저 손 빠르게 음료를 만들었을 뿐, 커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셈이었다. 처음에 나는 카페 4년 차 경력을 대단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커피 추출부터 우유 스팀까지 내가 하고 있던 커피제조는 완전히 잘못되었단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4년 차라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호주 커피문화는 아이스가 아닌 핫이 주라고 봐도 무방했다. 한국의 얼죽아들은 놀라겠지만 나도 점차 호주의 뜨듯한 커피에 물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르게 너무 뜨거워선 안된다. 알고 보니 우유의 60-65도가 가장 달고 맛있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 이 온도로 제조하면 100% 컴플레인이 들어올 것이다)


처음부터 커피제조를 맡겨주진 않았다. 손님이 없을 땐 내 커피를 만들어 마시면서 연습했고, 너무 바쁘거나 커피 제조할 사람이 없을 때는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넘봤다. 점점 스팀도 커피추출도 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조금씩 커피맛에 예민해지고 오늘 커피맛은 어떻나를 연발하며 꼴값 떨고 있는 나도 발견했다.


신기하게 내 커피를 좋아해 주는 손님이 생겼다. 그녀는 네가 만든 커피가 정말 좋다며 내 기분을 한껏 올려주기도 했고 항상 나를 찾곤 했다. 그렇다 보니 우유 온도부터 커피 추출까지 신중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는 커피 종류에 따라 잔을 달리 줘야 하는 것도 있었다. 롱블랙(아메리카노), 플랫화이트는 같은 모양의 잔 하지만 피콜로(우유:에스프레소 비율이 1:1), 라뗴는 각자 다른 잔에 담아야 한다는 게 통용되고 있었다. 한 번은 라테를 시킨 손님에게 플랫화이트잔에 주었다가 잔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한 번은 라테 온도가 맞지 않다, 내가 원래 먹던 커피가 아니다 등 컴플레인은 정말 정교했다.


호주 커피는 그냥 지나가는 카페에 들어가도 맛있는 편이었다. 가끔 정말 별로인 카페는 존재했지만 대부분 커피맛은 진하고 좋았다. 과연 커피 공화국 다웠다. 어려 보이는 아이들도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메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요즘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 같지만 나 때는 커피는 절대 안 되는 식품이었던지라 혼자 놀란 경험이 있다.


신기한 건 대부분 손님들이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는 것이었다. 10이면 9를 매일 같은 커피, 자신이 커스텀한 커피를 주문했고 자연스레 주문할 때면 as usual?이라는 말과 멀리서 걸어옴과 동시에 손님들의 커피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우리나라와 다른 커피문화가 정말 흥미로웠다.


호주의 자연환경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호주가 왜 커피문화가 발달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유명하다는 나라에서 일을 해본 것 하나로 커피를 좀 아는 사람이라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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