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사람 간 거리가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익스큐즈미~ 혹은 고개를 약간 숙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호주를 살며 생긴 후천적 버릇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을 돌아오고선 그럴 일이 없어졌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에선 (아마 서양권에서는 그런 듯하다) 옆, 앞을 지나갈 때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익스큐즈미와 약간의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는 문화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게 서로의 마음의 거리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가까워지면 체취와 열기를 풍기게 되고 낯선 이에게 나의 체취 또는 열기를 풍기는 건 어쩐지 선을 넘는 것 같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 살면서 나는 빠르게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문화는 조금 접더라도 호주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 현지인으로 살아보자!라는 게 내 모토였던 것 같다.
늘 여행이나 살이를 할 때면 난 그 나라에 맞게 살다가는게, 알아가는 게 좋다. 짧은 시간이라도 현지음식을 현지인방식처럼 즐긴다거나, 집 앞 놀이터를 놀러 온 것 마냥 놀다 가는 게 좋다. 여행지에 갔다고 너무 화려하게 꾸미는 건 어쩐지 나에게 맞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중국살 때는 한국인이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호주에 살동안 나는 모르는 사람옆 혹은 앞으로 지나가야 할 때 익스큐즈미를 내뱉게 되었다. 사람이 오기만 하면 거의 자동로봇처럼 내뱉은 것 같기도 하다 ㅋㅋ 그렇게 한동안 적응을 하다 동양문화를 가진 이민자는 그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얼른 익스큐즈미를 하세요!라고 느낄 뻔도 했다. 어쩐지 가까운 거리에 익스큐즈미를 하지 않는 게 예의에 어긋나 보이기까지!
이내 나 또한 그 문화가 생소했고 어쩐지 동양, 서양문화가 다르다는 게 이런 곳에서 나타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꼭 그들 문화를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이미 호주는 다문화 국가일뿐더러, 흔히 말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것들이 그다지 맞지 않는 나라가 된 것 같다. 서로의 존중이 필요할뿐
또 이렇게 분류하는 건 의미가 없다. 앞서 말했듯 이미 다문화국가로 백그라운드는 동양권일지라도 서양권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복합적 문화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이건 내가 서양권에서 자랐기 때문에~ 혹은 동양권 문화를 가진 부모밑에서 자랐기 때문에~라며 그때마다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아참, 친구의 외국인남편에게 들은 한국인 특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표정이라고 했다. 지하철, 버스를 타도 다들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각자의 할 일을 하고 붐비는 곳에서 어깨를 부딪혀도 다들 어떠한 말없이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이다. 괜시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늘 바쁜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이 시렸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그런 상태로 호주에 갔다 자주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한참 진땀을 뺐었으니까. 같이 미소를 날려야 할 텐데 너무 어색했다. 플러팅같이 느껴지거나 그 짧은 시간이 너무도 어색했다. 하지만 현지인처럼! 마인드였던 나는 조금씩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낯선 이에게 잘 지어지지 않는 웃음을 지어보며 어느새 자연스럽게 미소를 날리고 있는 나를 발견! 이런 점을 보면 익스큐즈미도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문화이겠다. 따뜻한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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