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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May 25. 2024

어쩌다 중국을 경험했다.

내가 중국에 간 이유

중국살이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지 올해로 7년이 훌쩍 넘었다. 마지막 중국여행도 2018년 3월이었으니 여행으로 다녀온 지도 6년 이상이 된 셈이다. 애초에 중국이란 나라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지만 어쩌다 중국에서 1년 이상이나 살게 된 걸까?


어릴 적부터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외국어 하는 모습은 늘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어를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제2외국어는 늘 일본어였고 어릴 적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발달되지 않은 나라로 편견 가득했기 때문에 배워서 득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배우고 싶은 언어의 기준은 있었다. 효율성을 따지다 보니 한번 배우면 많은 곳에서 써먹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 말고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성적에 맞는 대학을 찾다 보니 스페인어학은 나에게 너무 기준이 높거나 낮은 대학교뿐이었다. 그렇게 성적 맞춰 그나마 흥미 있는 언어학을 고르려다 보니 중국학이 되었다는 심심한 역사?가 있다.


중국어로 숫자 1,2,3,4도 몰랐던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도 열심히 배우면 중국어를 내뱉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1학년이 끝날 때쯤 식어버렸다. 대학교는 역시 학원과 다르지 않은가. 입시를 한창 치르다 대학교를 왔으니 당연지사 입시처럼 가르쳐줄 거란 기대가 있었나 보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걸 잊고 마냥 어렵기만 한 중국어가 흥미가 생길 리 만무했다.


그렇게 점점 중국학은 나에게 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중국어가 들어가는 학점은 하나같이 다 낮았고 학교가 싫증까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2학년 2학기에는 해당 학번인 학생들, 동기나 선배들 등 베이징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혼자'빠지는 사태도 있었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나왔던 건지 중국이란 나라에 흥미가 없다 보니 한학기지만 그 시간에 나는 다른 걸 할래라며 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론 아무것도 결과를 낸 건 없었지만. 오히려 3학년 선배들과 수업을 듣느라 학점은 더 낮아졌더란다. 그렇게 중국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인생은 역시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에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로 스탭생활을 하러 갔다. 워낙 여행을 좋아했던 시기라 제주도에서 숙식제공에 여행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제주도행 티켓을 끊어 훌쩍 떠났다. 한창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시기라 게스트 하우스에는 찾아오는 중국인이 많았다.


나를 스태프로 뽑은 내막을 보니, 게스트하우스 부부사장은 내가 중국학이라 중국인들을 대우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껍질만 중국학이지 0세 중국어린이보다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일 줄 누가 알았으랴? 나는 한 자 한 자 이야기하며 오히려 영어를 쓰는 게 더 나았을 정도의 수준으로 중국인들을 대하고 있었다.


하루는 내 나이또래 중국인 2명이 놀러 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쟤 중국어 할 줄 알아요!' 하는 바람에 나는 꼼짝없이 어지럽기 짝이 없는 중국어를 꽤 긴 시간 동안 듣고만 있었다. 1분만 지나도 얘가 그다지 중국어는 못하는구나 싶었을 것이다. 근데 한 명이 계속해서 나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고 나는 그때마다 어리둥절했다. 다른 한 명은 내가 걱정됐는지 '쟤 못 알아들으니 그만 중국어로 얘기해라'라며 핀잔을 주었는데 그런 단어(팅부동:못 알아듣는다)는 아주 잘 들리는 게 신기할 노릇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배려 넘쳤던 말인데 중국학도의 자존심이 조금 있었는지 얼른 중국어를 배워서 보여줘야겠다!(어떻게 보여줄 건지..) 나도 한다면 해!라는 마인드, 그리고 나도 할 수 있거든? 하는 자격지심이 모여 중국으로 유학 갈 결심을 내렸다라는 다소 허무한 스토리다.


그뿐만 아니다. 그 둘과 또렷한 의사소통은 하지 못했지만 바디랭귀지며 영어며 다 꺼내 소통을 하다 중국어를 하나씩 가르쳐주곤 했다. 어라? 막상 상황에 맞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언어를 배우듯이 나도 그들에게 단어를 배우니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훨씬 습득도 이해도 빠른 것이다. 이래서 다들 유학가려고 하는구나!를 깨달으며 그 며칠이 몇 년 동안 대학교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중국어 흥미 이슈가 해결되었더랬다.


유레카!


인생은 새옹지마, 내 인생에 중국 갈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고 나는 그해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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