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린 Jun 17. 2024

혼란스럽지만 질서가 있습니다. 중국 문화 3

중국에 가지 않은지 어언 8년이 되어가고 있으니 현재 중국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유학했던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에게 중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 평소 겁이 많아 웬만해선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나는 중국에서 살아남기란 극악의 일이었다. 대련으로 이동한 첫날, 유학원에서는 간단하게 대련을 소개해주곤 했다. 어떤 음식이 대표적인지, 디저트는 어떤 게 있는지 등 그날 처음 푸딩밀크티를 먹은 게 생각난다.


밥과 디저트 시간을 갖은 후 대련의 시내를 둘러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시내 곳곳에 모여있었고 정말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미세하게 남아있다. 유학원 인솔자분들은 가방을 조심하라며 소지품 도난을 주의시켰고, 중국은 위험한 나라라는 편견이 강하게 있었던 나는 가방을 몸에 딱 붙여 붙잡아 들고 가기 바빴다.(딱히 중요 소지품은 없었지만)


나에게 중국 대련은 첫날부터 고난이 아닐 수 없었다.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서 도착지에 도달하기가 너무 힘든 도로시스템 때문이었다. 무단횡단하면 한국에선 응당 빨리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도로 위에서 빨리 지나가려는 습관 때문에 하마터면 자동차에 치일 뻔했다. 인솔자분은 뛰지 마시고 천천히 걸어가면 자동차가 알아서 피한다라고 알려주었다.(예? 차가 다가오기만 하면 움찔대느라 평온히 지나가는게 어려운데요?)

북경사진뿐

정답 없는 이 모호함에 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시내투어를 끝내고 돌아온 날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곯아떨어질 만큼 많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날 나는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뛰지 말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보폭으로 무단횡단을 해야 한다는 걸 배웠더랬다.


(실제로 대련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가 급브레이크를 하도 많이 밟는 바람에 상복근이 생길 정도라며 놀이공원은 여기에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다. 그만큼 대련은 차와 사람이 같은 수단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랬던가, 조금 시간이 지나니 스트레스받았던 무단횡단이 더 이상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날도 대련의 시내에서 룸메이트 언니와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련은 트램이라 하는 지상으로 움직이는 대중교통이 있다. 그 무질서한 도로 위에도 트램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는 걸 인지 못한 시기였다.


룸메언니와 나는 이제 이쯤이면 무단횡단은 껌이라며 속으로 외칠 쯤에 트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다.

트램이 오는 길에 들어서서 걷고 있었던 것, 트램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 길에서 나갈 곳이 안 보여 트램정류장을 뛰어넘으려는 찰나에,(트램 정류장은 성인 허리까지 오는 울타리?가 있다) 트램기사가 우리를 보고 트램을 멈추었고 절로 비키라며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트램기사의 시력에? 다행히 치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느낀 건 트램길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 둘 뿐이구나! 이 혼돈 속에서도 그들에게 통하는 질서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트램길을 가지 않는다라 던 지. 몇 번의 시행착오 속에서 더 이상 튀지? 않고 살아남는 중국 생활을 체득할 수 있었다.

대련학기가 끝나고 나는 북경으로 이동했다. 북경에서 1학기를 보내기로 했다. 북경은 대련보단 도로사정이 나았다.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할 필요는 없었다. 도시마다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지금은 상황이 더 달라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한 번은 중국친구들과 대여섯씩 모여 천진시내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중국살이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라 더 이상 무단횡단이 개의치 않던 시점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무단횡단을 하려는데 중국친구가 아직 건널 때가 아니라며 나보고 건널 때 조심하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때도 우리는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는 도로였다. 신호등도 없는 이 상황에 '건널 때'를 맞추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때서야 또 느꼈다. 거만하게 아직 적응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과 혼돈 속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 그 나라에 적응하기까진 평균 몇 년이나 걸릴까? 아무리 같은 동양나라라지만 다른 게 정말 많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노파심에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무단횡단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도로에선 무자비하게 쌩쌩 달리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급한 성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중국에서 무자비하게 했던 무단횡단 스위치는 단단히 꺼두었다. 중국을 방문한다면 다시 켜질 스위치가 준비된 셈이다.

이전 03화 건강에 진심입니다. 중국 문화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