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베들레헴이란 동네에서 태어났고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여러 식구들을 부양하기에는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나라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다. 엄연한 왕손이었건만 로마의 지배 하에서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항상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어머니 마리아가 혼전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라던가 로마병사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생긴 아이라던가, 흉흉한 소문이 항상 그의 주변을 떠돌았다. ‘사생아래요, 사생아래요.’ 동네 꼬마들은 항상 그를 보면 돌을 던지며 놀려댔다. 그는 항상 외로웠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그는 그저 가난하고 외로운 더러운 꼬마일 뿐이었다. 항상 외로운 예수는 율법과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오직 그가 고통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길은 그것 뿐이었다. 매우 어릴때부터 율법과 성서를 탐독한 그의 수준은 왠만한 어른 뺨칠 정도였다. 일찍 율법과 성서의 의미를 터득한 그는 당시 통용되고 있던 율법의 오류들을 간파하기 시작했고 잘못된 율법의 해석들에 분개하였다,
그는 평소 아버지를 도왔다. 목수 일을 돕다 보니 여러 나무 형상들을 만들었고, 그 중에는 십자가 형틀도 있었다. 예수는 자기가 만든 십자가 형틀에 자신이 매달릴 것을 물론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돕고 율법을 공부하던 예수는 어느덧 30세가 되었다.
그는 어른들과 율법을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종말론적 사상과 메시아를 대망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그 딴 것은 너희와 상관 없으니 너희 죄부터 회개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가 지칭한 ‘너희’가 바로 종교족 정치적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분개한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민중들이 예수를 추앙하였으므로 쉽사리 죽이지 못했다.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배신한 제자 하나를 포섭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다. 그들은 배신한 제자에게 돈을 주고 예수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문과 모욕을 가한 다음 십자가 형틀에 달아 죽였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데, 하나 둘 죽은 예수를 봤다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쳤다고 치부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예수가 살아 돌아 온다면 그건 정말 어마어마한 종교운동이 될 것이다. 역사를 뒤흔들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기로 했다. 어떤 역경이 와도 쓰러지지 않기로 피로써 맹세했다. 그리하여 오순절이란 명절을 기점으로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담대히 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백해도 있었으나 그들의 맹세를 기억하며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는 아직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그것을 믿는 것은 예수의 행적을 총체적으로 믿는 것이지 부활, 기적, 승천 등등 개개의 사건을 믿는 것이 아니다. 부디 그리스도교를 믿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