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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Apr 15. 2024

생존의 기로에 서다

-인도 음식, 더위 그리고 전공 고전어와의 사투-

뎅기열에 걸리다-

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었다.

때는 더위가 막바지로 치닫는 시기로 열병이 극성을 부리는 시기였다. 동남아에서 흔한 열병인 뎅기열은 면역력이 약하면 생기는 질병으로 고열에다 온몸이 근육통으로 심한 통증이 수반되며 전염력이 강해서 누군가 이 병에 걸렸다 하면 그의 방 출입은 물론 옆에 다가가지도 않았다. 준희가 바로 그 병에 걸렸다. 아직 인도에 온 지 몇 달 밖에 안된 준희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 또다시 온 거다. 고열이니 목이 너무 말라 물을 마셔야 하는데 전염력이 강하니 아무도 기숙사 방에 오지도 않는다. 


같은 층에 있는 인도인들은 식당에 안 나타나는 준희를 보고 뎅기열을 앓고 있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식사하러 내려가며 방문을 노크한다, "하이 괜찮아?" 하고 밖에서 묻고 지나간다. 마치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양. 야속하다 그러나 이해가 간다. 문 열고 얼굴을 마주 하거나 물을 가져다주는 행위는 자신도 뎅기열에 걸리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거다. 모두들 집을 떠나와 유학하고 있는 형편이니 자신의 몸 건강이야 말로 가장 소중한 게 아닌가.   

   

인도 물은 전기 주전자에 끓이면 바닥에 하얗게 가루가 가라앉으니 웃물만 따라서 마셔야 했다. 어떨 때는 끓인 물 주전자의 3분의 1일이 석회질의 하얀 가루가 고여있어 정작 마실 수 있는 물은 한잔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고열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입에도 못 대고 물은 스스로 가져와야 하니 별수 없이 손을 복도벽에 짚고 의지해 걸어가 가까스로 수돗물 있는 곳으로 갔다 오기를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없고… 겁나고 무서워 눈물로 지새우며 부모님 생각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고통을 몇몇일 겪다가 모든 걸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 누구한테 연락도 사정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준희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생각한다. 


아, 내가 죽으러 인도에 왔나 보다’

'부처의 나라 인도에서 죽을 운명인가 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 죽음은 절대로 이 세상 끝이 아니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인데 그렇다면 이제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준희는 불현듯, 죽을 때 한 생각을 잘 챙겨가면 그다음 생에는 바로 그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 그 한 생각은, 준희가 그동안 늘 해왔던 ‘이뭣고(내가 누구인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다음 생에도 계속해서 참선도하고 공부도 할 것 같았다. 이제 눈물도 더 이상 나지 않고 부모님 생각도 모두 놓아졌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모두 사라졌다. 오히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는 평안한 평정심 그 자체가 되었다. 


 ‘그냥, 기다리자!’

 

준희는 방에 딸려 있는 베란다 안락의자와 침대를 서서히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의 결심을 단단히 다지기 시작했다. 이제 사무치게 그리웠던 고향인 한국도 가족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한 마음만 단단히 챙기자'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채워지기 시작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찾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나중에는 일어설 기운조차 없었다. 


'정말 이대로 가나 보다'. 

'더 정신 차려야지'. 


아랫배 단전에 꽉~ 그 한 생각을 향한 의지를 묶어 놓고 마치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기숙사 사감인 심리학과 교수님이 흰 가운의 남자 의사와 함께 들어왔다. 힘이 없어 눈인사만 겨우 하고 누워있는데, 기숙사 사감님이 의사와 대화를 나눈다. 준희 자신에 대한 이야기 이므로 그들이 하는 대화를 못 알아들으면 누가 통역해 줄 사람도 없는데 절대 안 될 거 같았다. 없는 기운에 귀를 쫑긋하고 죽을힘을 다해 신경을 집중해 들으니 쭈르륵 이해가 되었다. 

 

내용인 즉, 사감이 “이 외국인이 이렇게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데 왜 그런가?” 하고 묻는다. 의사는, “모기에 물려서 말라리아에 걸린 것인지, 아닌지 우선 피를 뽑아 봐야 알겠다” 며 진단결과는 내일 나온다는 거였다. 그는 피를 뽑아갔다. 준희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러 왔다는 사실이 좋았고 의사가 말한 결과를 기다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 것에 감사했다. 다음 날 결과는 말라리아가 아니라 풍토병인 뎅기열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는 약을 주었다. 먹기 시작하니 열이 내려가면서 차차 기운도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도에서 두 번째 시련이 지나갔다. 



-박사 수업과 논문지도-

수업이 시작되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는 이해가 중간 중 간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교과서는 산스크리크(범어)어에 파리어(인도 원시경전 텍스트 언어)였다. 참고 문헌은 영어로 된 논문이 주였다. 일단, 교과서 이름을 들어도 사전에서 찾아봐야 했다. 이게 어디에 속하는 무슨 경전인지를 범영 사전을 통해 알아내야 했다. 그동안 공부하고 논문 썼던 팔만대장경의 한문본과 참고문헌인 일본어가 아무 소용이 없다. 원문텍스트를 잘 이해하기 위해 산스크리트와 파리어 자격증 과정에도 들어갔다. 학과 수업에 고어 자격증 과정까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늘 사전과 씨름해야 했고 영어 강의는 이해하기가 어려워 매 수업이 끝나면 인도 학생에게 다시 되묻고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식사에도 있었다. 날아다니는 밥에 주식이 밀가루나 보리가루로 동그랗게 빚어 구운 자바티에 콩류로 만든 달, 우리식으로 국이다. 기름 범벅인 야채볶음이 전부인 메뉴인데 문제는 그 음식마다 나는 강한 향신료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바나나 10개 정도로(인도 바나나는 주로 크기가 작은 종류가 흔하다) 끼니를 때워야 했다.    


 인도에 온 한국학생들은 더위와 음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도저히 못 견디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음식에서 나는 향신료 냄새를 우리 한국 학생들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어했다. 오죽하면 노란색만 보면 자지러질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이 인도 음식의 대부분은 강황가루 넣고 요리하기 때문이다. 더위로 땀에 젖은 인도인들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난 후 반듯이 겨드랑이에 하얀 파우더를 칠한다. 아마도 냄새를 피하기 위해서 인 거 같았다.  


더위는 상상을 초월해서 선풍기가 세차게 돌아도 더운 바람만 나오므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보며 누웠다가 겨우 잠이 들었나 하는데, 어느새 시뻘건 태양이 솟구쳐 오른다. 그때 심정은, '저 것 좀 안 떠오르게 할 수 없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간절한 소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며 부르짖었다. 준희는 이런 생존의 고통하고도 싸워야 했다. 공부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더위나 음식등 삶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여건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바나나만 먹어서는 도저히 기운이 없어 뭘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가까운데 음식점이 흔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 상대 교내 매점은 메뉴가 가늘고 마른 볶음국수가 주가 되니 기운을 얻을 단백질은 아침 메뉴에 나오는 삶은 계란과 바나나 각 한 개 그리고 짜이(인도 밀크 티)와 식빵이 전부였다. 이제, 준희는 하나씩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학문을 위한 고전어는 자격증 반에 들어 열심히 하면 될 것이니 다음은 건강을 위한 음식이다. 어떻게 할까? 이제 바나나로 매번 끼니를 때우기도 지쳤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도는 오전과 오후에 누구나 어디서나 우유로 만든 짜이를 마시는 것이 전통이다. 관공서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카페인과 우유라는 영양을 함께 섭취할 수 있는 짜이가 인도인들에게 필수 생활이 된 거 같다. 그래서 마을마다 우유를 파는 부스가 있다. 시멘트로 작게 만든 부스는 이른 오전 두어 시간만 우유를 판다. 각 가정은 하루 동안 요리나 짜이를 만들 때 쓸 우유 받아갈 긴 통을 들고 와 줄 서서 우유  받아 가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통이 없는 사람은 비닐봉지에 든 우유를 살 수 있다. 준희도 그 우유를 매일 사 와서 끓이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 우유는 살균이 안 돼서 그런지 무조건 사 오면 끓여 놔야 했다. 끓인 다음 식혀서 요구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햇볕이 아주 강하니 그냥 그릇에 요구르트를 한 수저 넣고 손수건으로 덮어 베란다 햇볕에 놓으면 두어 시간 만에 저절로 만들어진다. 


인도 우유는 정말 진해서 끊이면 마치 우리나라 소꼬리 고은 듯이 두껍게 지방 층이 생긴다. 이런 우유는 인도 말고는 없는 거 같다. 요구르트를 만들면 마치 진한 순두부처럼, 아니 지금 식으로 그릭 요구르트가 된다.  준희는 향신료향 때문에 못 먹는 음식섭취를 요구르트에 바나나를 섞어 끼니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 진한 요구르트는 단백질공급에 손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진해서인가 약간 역한 구린내 같은 냄새가 나서 다른 한국학생들은 그것조차 먹지를 못했다. 그러나 준희는 이것을 냄새난다고 못 먹으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죽는 길 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맛이 아니라 약을 먹듯이 퍼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역한 거부감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제 생존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으니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은 이후로 건강이나 기운에 아무 이상이 없이 힘이 났고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뎅기열에 걸려도 두렵지 않으며 거뜬하게 건강에 자신감까지 생겼다. 인도인들은 비건 즉 채식 주의자들이 대다수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 우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육류를 섭취하지 않아도 충분히 건강한 단백질이 우유에 있으니 우유로 만든 요리도 다양하게 발달되었다. 




-훌륭한 인도 교육시스템-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듯이 지도교수를 만나 논문에 관한 토론을 해야 한다. 학생이 매 챕터마다 글을 써와서 지도교수에게 설명한다. 그러면 교수는 방향 설정이나 틀린 부분 등을 설명해 주는데 학생이 동의를 못하면 얼마든지 이의제기할 수 있고 교수가 안된다고 하면 다른 방식으로 준비해 와서 다시 토론하곤 한다. 준희는 딱 한 쳅터가 그런 식으로 애?를 먹었었다. 세 번 정도 오가다가 할 수 없이 교수 뜻에 따르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글쓰기는 한국에서 가져간 타이프 라이터로 쳤다. 흑백 컴퓨터는 공공기관에서나 보았고 노트북은 아예 없던 시대였다.    


교육은 영국식이라 도서관 시설도 시스템도 아주 훌륭하다. 예를 들면 어떤 자료가 부족하면 어느 지역에 어느 도서관에 가면 있다는 정보가 나온다. 델리대학교는 한국식으로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캠퍼스가 아니라 델리 뉴델리 등 도시 여기저기 단과대학이 60여 개나 된다. 그러니 학부생인 경우 델리대학교 기계공학과가 아니라 어느 칼리지(대학)의 기계공학과로 말한다. 그 칼리지에 따라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은 대학 본부에서 일괄 관리되므로 기숙사도 강의도 모두 한 지역으로 통합되어 있다. 

  

도서관 시설도 잘 되어 있어 특히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쿨러가 설치된 방에 칸칸으로 되어 있는 3층 꼭대기 방은 정말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중간에 짜이 마시는 시간이면 복도 한가운데 있는 찻집으로 가서 아래 캠퍼스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즐긴다. 이때 관심 끌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국과 달리 인도인들이 싸움하는 것을 보기는 정말 어렵다. 인도 머무르는 5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하루는 차를 마시면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저 아래서 두 사람이 서로 밀치며 싸우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모두들 흥미진진해서 몇몇은 엉덩이까지 들어 올려 창밖을 내려다보며 집중하고 있는데 그만 순식간에 끝나버리자 구경꾼을 자처했던 방청객? 들이 실망으로 내는 쩝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도사람들은 정말 다툼이라는 것이 없다. 차를 운전하다가 부딪쳐서 사이드 미러가 부서져도 서로 쳐다보고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당시  길에 다니는 자동차에 사이드 미러가 없는 차가 많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가 상대방의 카스트를 확인하게 되며, 그때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은 그냥 고개를 숙인다. 아마도 외모로 카스트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브라흐만 계급의 사람들은 얼굴이 흰 편이다. 그리고 항상 인도 전통의 옷을 남녀 불문하고 입는다. 


준희의 바로 앞방에 사는 친한 친구였던 브라흐만 계급의 찌뜨라(Chitra)는 기숙사에서 밤에도 잠잘 때 입는 사리가 따로 있어 그걸 입고 잘 정도다. 다른 인도인들은 대부분 나이티라고 해서 편한 원피스 차림의 옷을 밤에 입는데 그녀는 한 번도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그녀와 지내면서 준희는 역시 브라흐만이라는 상위계층이 이래서 다르구나라고 감탄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매사에 바른 생각과 판단을 보면서 인도와 인도인에 대한 인상, 그리고 카스트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당위성? 까지 느끼게 할 정도였다.   


각설하고,

그러니 싸움을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같다. 또 다른 이유는 인도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내생 관련 믿음이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그리고 안 되는 이유는 전생에 뭔가 잘못이 있나 보다 지금 잘하면 다음에는 보상이 오겠지.라는 마음가짐들이기 때문에 도무지 급할 것이 없고 불평불만도 없다.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매사에 너그럽다. 그러니 아등바등 싸울 필요가 없다. 모든 게 그저 운명인가 보다 여기며 사는 거 같았다.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낯선, 그러면서도 서서히 나도 모르게 익숙해 가기 시작하는 그들 삶의 방식에서 준희는 그 정체를 무엇으로 규명해야 할지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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