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동네 곳곳 넓은 공터에 잔디로 덮인 정원이 있다. 그 잔디밭에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한다. 그런데 반듯이 빠지지 않는 풍경 하나가 있다. 누군가는 꼭 가부좌 자세로 명상에 잠겨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삶의 편편들을 보면서 준희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인도인들은 서로 다투는 일도 거의 없으며, 매사 불평불만 없이 느긋할 수 있을까? 사는 게 힘겨워 보이는 가난에도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그저 운명 인양 받아들일까? 이런 의문이 매번 닉샤를 타고 릭샤꾼과 대화를 해봐도 시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의 일관된 태도는 다를 바 없어 늘 마음가운데 하나씩 그 의문이 쌓여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적인 뉴스가 된 대형사건이 인도에서 터졌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숙사에서 토스트와 짜이를 마시는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아침이면 신문을 보거나 대화하면서 먹는다. 그런데 그날, 인도 마띠아프라데시 주 보팔이란 지역에서 화학공장이 폭발해 수천 명이 현장에서 죽었으며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 세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정확히 1984년 12월 2일(희생자가 1만 9천 명이 넘었고 부상자는 5천 명으로 집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사고였음에도 함께 아침 식사를 하던 인도인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경악이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 그 자체였다.
뉴스를 보고 식당으로 가서 앉자마자 준희는 놀라서 큰소리로 흥분해 외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신문 봤어?? 보팔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바로 앞에 앉은 인도인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인도인들은 한쪽 어깨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옆으로 내렸다 올리며 입을 삐죽이 내미는 제스처를 자주 한다. 그 의미는 '뭐, 별관심 없어' 혹은 '나하고는 상관없어' 또는 '그래서, 뭐?라는 의미다.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준희의 물음에, 그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태도였다. 몇몇은 아직 모르는 듯해서 준희는 신문을 보여주며 보라 하니 그녀도 역시 아무런 반응 없이 신문에 눈을 고정한 채 묵묵히 토스트를 열심히 먹는........, 무반응을 보였다.
한국사람 준희는 그들의 이 반응이 사건 자체보다 더 놀라웠다.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충격적인 감정을 표하는 사람이 없나 하고 둘러보니 저쪽 끝에 앉은 아프리카에서 온 여학생이 반응한다. 자신도 놀랐단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준희는 또 인도라는 나라, 인도인들의 이러한 습성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에 다시금 의문이 꽂히며 궁금해져 갔다. 준희가 가진 특성, 한번 의문을 가지면 저장해 놓고 반듯이 풀어보고자 하는 그녀의 성향이 서서히 발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성장하면서 쭉 지켜왔던 그 천성이 아닌가.
준희의 이 호기심에 추가적인 의문이 공부하는 동안에도 맞닥뜨렸다.
학과 수업시간에 듣는 인도철학사나 인도불교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감상이, 어쩌면 인도에는 이토록 깨달은 성자가 많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냥 텍스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들에 관한 설명을 보면,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은 각각의 학파까지 구성해서 그들을 따르는 사람이 수천수만에 이른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인도인들에게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붇다는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듯이 인도에서 태어난 최고 최상의 위대한 성자가 아니라 그저 수많은 깨달은 자 들 중 하나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석가모니는 수많은 신의 화신 가운데 하나 인 셈이다. 그러므로 인도에는 불교 신자도 딱히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석가모니 붇다는 그저 수많은 인도 힌두교 성자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준희는 어쩌면 인도에서 이렇게 수많은 각성자들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인가? 공부하는 동안에 등장하는 납득할 수 없는 많은 정황들을 텍스트에서 보면서 인도에 관한 의문이 점점 고조되었다.
왜? 그럴까?? 어떻게 이렇게 다수의 성자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인도에서 성자들이 수세기 동안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로 까지 이어져 석양이면 동네 잔디밭 곳곳에서 가부좌로 앉아 명상을 하는 것으로 지속되고 있는 건 아닌지??
당시, 인도에서 거의 매일 나오는 뉴스에서도 이 의문의 고리는 또 있었다.
인도 뉴스에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 아이템이 있다. 아침에 신문을 들면, 먼저 눈에 띄는 칸에는 으레 시집간 여자가 시집갈 때 가지고 가는 다오리,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하면 혼수다. 그 혼수를 적게 가지고 왔다고 부엌에서 사리를 입고 요리하는 며느리에게 사리의 늘어진 뒷부분에 불을 붙여 며느리를 불에 타 죽게 했다는 뉴스다. 며느리가 죽으면 다시 아들을 돈 많은 여자에게 장가보내 다오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친구에게 물으니 이렇게 뉴스에 나오는 건수는 극소수일 거라고 한다. 아마도 시골 외진 곳에서는 수십수백 건이 일어나지만 뉴스에는 안 났을 거라고 분노 섞인 답을 한다. 너무도 당연히,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인도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현실에 대해 몹시 분개했다.
준희는 이토록 잔인한 마음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의문이 갔다. 그토록 많은 성자와 요기들을 배출한 인도가 어떻게 이토록 정반대의 잔인함이 사람의 탈을 쓰고 행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이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더욱 끔찍한 사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가적인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인도 최초 여성 총리이고 두 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했던 인디라 간디 수상의 암살 사건(1984.10.31)이었다. 터번을 쓴 시크교도였던 경호원에 의해 수상이 피살되었다. 당시, 델리는 인디라 간디 수상 지지자들의 들끓는 분노로 시내는 거의 폭동 수준으로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뉴스에서는 시민은 절대로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으며, 실시간으로 나오는 뉴스에 유난히 같은 문장이 여러 번 방송되는 내용이 있는데, " hacked to death"라는 문장이었다. 매 시간 이 문장이 실시간으로 빠지지 않고 나왔다. 준희는 그 문장, 'hacked to death,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 의미는, 살아있는 사람을 날카로운 것으로 목을 잘라 죽인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 많은 성자와 요기가 태어난 성스러운 인도에서, 같은 인도인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폭동의 소요가 가라앉기까지 기숙사 밖 출입도 못한 채 지내면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폭동의 뉴스에서 그 문장을 매번 들으며 소름이 끼쳐와 견딜 수가 없었다. 준희는 도저히 그 의문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의무감 마저 들었다. 누군가는 이런 의문의 덩어리를 풀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났다. 3월에 있었던 인도 대축제 홀리(holy)였다.
인도는 3월이 되면 홀리(holy) 축제를 한다.
그 축제는 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는 오랜 힌두교전통에서 나온 종교와 문화의 화합의 축제다. 종교와 종파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이틀 간의 축제에서 그 각 종파에서 상징하는 원색의 가루를 상호 간에 뿌려가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두 번째 날은 공중에 뿌려대며 오색찬란한 색깔의 향연이 펼쳐지는 축제이다. 물감색의 가루를 뿌려가며 개인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축제 날에 인도인들은 헌 옷을 입는다. 원색가루로 온몸이 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자체 규정이 엄격한 여자 기숙사에서 잔디밭에 큰 양푼에 우유를 담아놓고 너도 나도 마시면서 물감색을 뿌려대고 있었다. 준희는 요구르트가 아닌 생우유를 먹으면 속이 안 좋으므로 그냥 입에만 대었다가 말았는데 독일에서 온 친구는 더위에 시원한 우유를 마냥 마시더니 갑자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준희 이름을 부르며, 느끼하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 우유가 그냥 우유가 아닌 거였다. 그 우유에 마약 성분이 든 것을 섞어 놓았던 거였다. 준희와 독일인 친구만 몰랐을 뿐 인도 아이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 독일인을 보고 그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물론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인도인들은 적당히 마셨지만 독일 친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목마른 더위를 식히려고 우유를 듬 뿍 마셨다가 그렇게 되었다.
홀리 축제 기간에는 엄격한 기숙에서도 그런 마약 성분이 허용된다고 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오전에 잠깐 밖에 나가 색물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보이지만, 오후면 거리에서 여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남자들이 어깨동무하며 몰려다니는 광경이 여기저기 연출된다. 모두들 술을 마신 듯이 비틀거리며 소리를 내지른다. 마약을 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도 홀리 축제일에는 허용이 된단다. 참고로 인도에 술은 없다. 호텔에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파는 맥주, 그것도 아주 비싸다. 날씨가 너무 더우므로 술을 마시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그래서 뉴스에 보면 시골에서 메틸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먹다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사람들은 홀리 축제, 일 년에 단 한 번 암묵적으로 허용된 마약파티에 너도나도 절어져 흠뻑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것 같았다. 준희는 이 대목도 또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축제라는 형식을 빌려 기원전 4세기부터 행해져 온 마약파티라니.... 정부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된 홀리 마약 축제가 왜 전통적으로 고대서부터 현재까지 행해져 왔는지 분명히 그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도대체 인도인들의 잔인함, 그리고 그 수많은 성자들의 등장도 그렇고 또한 고대부터 마약파티로 마음속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릴 수 있도록 허용한 전통의 축제까지 모든 게 하나의 의문의 덩어리로 점점 커지며 가슴을 짓눌러 왔다.
이제, 준희는 혼자 있을 여유만 생기면 이 의문의 덩어리가 제일 먼저 고개를 내밀며 어서 해결하라는 듯이 삐죽이 솟구쳐 올라, 생각의 단초를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문이 깊어만 갔다. 걸을 때도 쉬고 있을 때도 머릿속은 그 의문으로 맴돌았다. 이제는 학과 공부보다그 의문이 우선적으로 자리하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다가 봄, 그러니까 아마도 다음 해 봄인 거 같다.
거리를 걷다가 문득 한 느낌이 절절하게 심장 속을 파고들었다.
‘아, 이 강렬한, 허허(虛虛) 로움!’
강력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그 느낌은 '허허로움' 그 자체였다.
인도라는 땅이 내뿜는 에너지! 그것은 바로 강렬한 허허(虛虛) 로움이었다.
몹시 허망하고 황량한 느낌!
온통 비어있는 느낌, 어디에도 기댈 것이 없는 이 강렬한 허허로움 때문에 인도인들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명상에 빠져 들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럴 경지까지 갈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마약에 흠뻑 빠져 그 허허로움에서 훨훨 춤추듯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기회를 부여해 주고, 그 허허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의 잔인함을 무도하게 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거였다.
준희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토록 열광적으로 몰입해 명상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토록 많은 성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축제라는 명분으로 마음껏 마약을 먹을 수 있도록 허용했었구나."
준희는 마음과 몸을 바로 하는 게 힘들어져 가던 길을 뒤로 돌려 기숙사로 돌아와 조용히 침대 위에 앉아 선정에 들었다. 이상하게, 인도에서 선정에 들고자 마음만 먹으면 저절로 제자리에 돌입하는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것은 준희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습관으로만 여겼었는데 알고 보니 이 땅!, 인도에 바로 그런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허허(虛虛) 로움!" 그래서 앉아 선정에 들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그렇게 못하면 마약으로라도 풀어야 하고, 그런 허허로움이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강해지면 아주 쉽게 극악의 잔인함(hacked to death, 다오리)으로 전환될 수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