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준희는 서울 D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교수 초빙 공고를 보고 서류를 냈고, 지방 W 대 강사로도 나서기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오니 뭔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보이는 대로 여기저기 서류를 넣어 응시했던 것이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일은 평생교육원 강의였다.
준희는 당시 30대 후반이었는데 수강생들은 4~50대 혹은 60대 초반인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열광적인 호응은 D 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최초로 등록증 검사를 할 정도로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강의실로 다 들여보낼 수 없을 정도로 수강생이 몰려들자 대학 측으로부터 몇 가지 과목을 더 개설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까지 받았다. 연계 관련 과목을 두 개 더 개설했다.
인기 강의 제목은 <죽음의 철학>이었다.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유교와 도교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어떻게 설명되고 있으며, 어떻게 죽음을 대비해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강의였다.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는 분들의 열광적인 삶의 자세가 오히려 준희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들 가운데 10여 명은 준희가 평생교육원 강의를 2년간 하고 그만두었어도, 거의 10여 년을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준희가 근무하는 W대로 인사하러 오곤 했다
지방 W 대는 인도철학과 불교 그리고 비교종교등을 강의했는데 주말이면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 돈암동 집으로 오고 주 중 하루는 서울에서 강의하는 바쁜 일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호응도 좋고 보람도 느끼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도사리고 있는 듯 늘 찝찝한 무언가가 다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내가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등 등에 대한 의문들이었다. 인도에서 공부하느라고 잠시 놓아두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 모든 게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준희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강의에 열중하며 열광하는 수강생들의 호응에 흠뻑 젖어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시간이 감에 따라 서서히 옅어지며 대신 이 의문의 덩어리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준희는 다시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그 의문들을 덮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지인으로부터 서울에 유명한 도가 수행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준희는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불교의 큰 수행자도 인도의 요기도 다 만나 봤는데 중국의 도가를 수련하는 분을 만난 적이 없었다. 기대와 설렘으로 갔다.
-도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당시, 한 여름이었는데, 그 여름이 몇 년 만에 처음 왔다는 폭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견딜 수 없는 끈적끈적한 폭염이었다.
건물 한층 전체를 사용하는 도가 수련의 현장은 사무실만 빼고 에어컨이 없었다. 50대 중반정도의 풍채가 좋아 보이는 원장님은 일단 접수하고 회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액수가 컸지만, 까짓 도가의 수련법을 알려준다는데 뭐가 대수라 싶어 등록했다. 회비는 다음 단계로 갈수록 높아진다고 했다.
방식은 가부좌 자세로 앉아 정신 집중하면서 팔을 뻗고 손바닥을 펴서 50센티 공간정도에 걸려 있는 긴 종이를 오로지 정신집중의 염력으로 손바닥에서 바람이 나오게 해, 마치 바람이 불어 종이가 흔들리듯이 그 종이를 펄럭이게 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쐬면 정신집중이 안되므로 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폭염에 땀을 줄줄 쏟아가며 앉아 몇 시간이고 정신집중을 해서 염력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부엌에서 식사준비가 마련되고 점심 후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당시 수련생들은 준희와 어떤 남자 교수와 둘 뿐이었다. 그 교수는 준희에게 수련을 소개했던 분의 남동생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여름방학이라 준희도 그분도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던 거 같다.
그리고 종이컵에 하나는 물을, 다른 하나는 소주를 담아 놓고 오로지 염력으로 그 소주의 알코올 성분을 물로 옮겨 그 물에서 술 냄새가 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사람이 누워 있으면 그 위에 손바닥을 펴서 30센티 정도의 공간을 두고 움직여가며 그 누워있는 사람에게 어떤 질병이나 혹은 안 좋은 부위를 손에서 오는 느낌으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첫 단계가 두 달 코스였는데 그 기간 동안 준희는 원장선생이 제시한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걸려 있는 종이도 펄럭이게 했으며 물에서 정말로 술냄새도 났다. 몸 진단도 아주 정확했다. 반면에 그 남자 교수는 목표달성에 실패하며 준희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분은 줄줄 땀이 흐르는 더위를 정말 힘들어했었다.
원장은 기뻐서 목표제시만 하면 성공해 내는 준희를 몹시 칭찬하며, 본인이 여수에 센터를 지을 것인데 준희 방을 특별히 마련해 준다고 했다. 준희는 그 원장을 집으로 까지 초대하며 융숭하게 대접했다.
수련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준희는 엄마의 몸도 진단하고, 엄마가 아프다는 데를 만져주면 다 나았다고 좋아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즐거운 신기한 세계로 빠져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을 술로 만들어 술장사 할 것도 아니고 환자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의사가 될 것도 아닌데, 이런 수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치 인도에서 만난 요기가 몸이 연기가 되어 병 속으로 들어갈 테니 와보라고 초대받았던 때와 같은 허무 맹랑했던 느낌이 생각났다. 이런 수련이 나, 존재 자체를 이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갑자기 허망해졌다. 이런 쓸데없는 일? 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준희는 두 달 만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의문의 덩어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자신 존재에 관한 물음이었다. 여전히 준희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의 답을 못 구한 상태였다.
-또다시 의문의 덩어리로 가슴이 짖 눌리다-
'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도대체 무언가? '
'그토록 열심히 뒤져봐도 내가 알 수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인도에 까지 가서 본 고대 전통의 서적들에는, 인간이 우주와의 합일이나 깨달음을 얻으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 최상의 완전한 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그 완전함은 삼명(三明) 육통(六通)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에 대한 복잡한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직접 보고 듣고 만지지 않아도 목표만 설정하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준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도 가기 전까지 거의 6년간을 이 의문하나로 깊은 선정에 잠겨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달리며 참선을 해 왔지만 얻은 게 없었다. 적어도 삼명 육통 가운데 타인의 전생을 알 수 있다는 엄청난 능력이 아니더라도 고작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건 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준희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다시 예전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사색과 선정으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책임 구성요원이니 대학의 교수로서도 또는 평생교육원 수강생들의 열정과 희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의지처로서의 역할도 다 해야 하니 준희에게는 늘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큰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학생들과 2박 3일의 학술답사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가 하동 하회마을이었다.
이른 아침에 숙소에서 눈을 떠 아침 식사시간 전에 주위를 돌아보려고 밖으로 나왔다.
걷다가 다다른 곳이 600년간 마을을 지켜왔다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이었다.
나무 주위로 둘러쳐진 줄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문구가 들어간 종이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삼신당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준희는 그 나무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어 그 앞에 섰다.
그때 준희 몸에 이상한 감각이 오기 시작했다. 발아래서부터 뭔가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것이 서서히 따습게 몸 전체에 퍼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척 경이로웠으며 신비 그 자체로 온몸에 와닿기 시작했다. 아주 생생하게, 마치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듯이 온몸 내부 장기들까지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신비한 활동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도 이른 아침에 또 찾아갔다. 공적인 활동이 없는 자유로운 시간은 이른 아침 밖에 없었다.
다음 날도 똑같은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게 뭐지??'
난생처음으로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신호 같은,
내 몸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몸의 감각이었다.
이제는 일정이 끝나서 돌아와야 했다.
공무로 간 이상 열심히 프로그램 따라 움직여야 했으니, 3일째는 안동을 떠나야 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 준희는 그 몸의 감각적인 경험을 잊지 못해 큰 나무만 있으면 그런 느낌을 다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거의 매일 하루 수업 일정만 끝나면 근처 산야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하동에서와 같이 큰 나무 옆에만 가면 그런 느낌을 다시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며, 도대체 그 감각의 실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또한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