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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Apr 08. 2024

폭염을 피해 라다크로

-민둥산 정상에서 생긴 일-

 -그리운 한국 음식-

인도에서 날아다니는 끈기 없는 쌀, 속칭 알랑미를 늘 기숙사에서 먹었는데 영사집에 초대받아 가니 일반미로 지은 밥에 김치가 나왔다. 인도는 찰기가 없는 쌀인 데다가 밥이 끓으면 그 물을 따라 버리고 밥 짓기를 마무리하니 밥에 찰기라고는 전혀 없이 한 알 한 알 따로 도는 듯한 밥이다. 거기에 한국식의 국과 반찬은 인도 음식에서 나는 독특한 향신료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거의 매 끼니를 바나나로 때우기 일 수였다. 아마 외국인들이 냄새 때문에 한국의 청국장을 못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런 식사를 델리 대학 기숙사에 들어온 이후 거의 두 달 이상을 하다가, 영사의 초대로 간 식사자리에서 30여 년을 먹어온 끈기 있는 쌀밥에 김치를 맛보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고 세공기쯤 먹고도 더 먹고파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니 청소부 밥을 남겨 놔야 하니 안된다고 한다. 너무 무안하고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만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마도 먹고플 때 못 먹는 서러움이 이런 것 인가보다 하면서. 배는 이미 불렀지만 그 고향의 향수 같은 밥맛과 김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까지 나려는 걸 꾹 참고 그만 수저를 놓으며 감사해했다.

 

인도 대학의 기숙사는 박사과정인 경우 독립적인 방이 제공되었다. B-40! 이것이 B 블록에 있는 내 방 번호 40이라는 의미이다. 인도는 거의 모든 시설에서 남녀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여성 기숙사는 4층 건물 3개 동이 있고, 길 건너는 남성 기숙사가 있었다. 기숙사에는 저녁 6시에 반듯이 입실이 되어야 하며 그 이후에는 두꺼운 현관철문이 닫친다. 식사 후에는 방번호를 대며 사감에게 존재여부를 알려야 했다. 매일 저녁 거의 5년간을 외쳐왔던 B-40였다.


인도에서는 가족이 없이 여자 혼자 밖에서 방을 얻어 사는 일은 절대 없다. 치안이 잘 안 되어서다. 해가 지면 거리에 여자는 볼 수가 없다. 그 시간에 버스를 타도 보호자 없이 여자 혼자 있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도 인도는 여자 혼자 다니다가 성폭행당한다는 뉴스가, 심지어는 버스 안에서 일어났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온다. 그러니 1980년대는 오죽했겠는가. 혹시라도 기숙사 근처에 있다가 해만 저물면 공포가 극도에 달해 죽어라고 냅다 뛰어 기숙사 철문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몇 번 있다.  


-한국과는 다른 인도 불교-

인도 델리 대학교 불교학과는 한국에서 배웠던 불교의 커리큘럼과 전혀 달랐다. 아차~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한국은 대승불교 권이라 대승불교에 속한 경전이나 주석서인데 반해 인도는 소승불교권이기 때문에 원시 아함경을 중심으로 한 주석서와 논서들이 주요 텍스트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경전의 원문인 범어(산스크리트어, 주로 대승불교)를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경전에, 논문이나 참고 문헌들은 일본어로 된 교재들이 주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인도에 오니 소승불교가 주로 파리(Pari)어 인 데다가 참고자료는 영어였다. 그러니 경전 이름을 들어도, 커리큘럼에 있는 내용을 봐도 도무지 무슨 뜻 인지 제목부터 알지 못했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는데, 그 설명마저 알아듣기 어려우니 인도친구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 답을 들어도 도대체 못 알아 들었다. 그 막막했던 심정은 마치 외계인이 지구에 온 심정에 비유할 만했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답답함! 절규가 저절로 뿜어져 나왔다. 준희는 숨이 턱 턱 막혀 왔다.  

 

그때부터 준희의 각고의 시간들이 만들어져 갔다. 우선, 영어가 급하니 절대로 한국인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을 작정했다. 기숙사에 티베트 불교연구로 자국에서 학위 논문을 쓰려는 독일인이 일 년 예정으로 티벳어를 공부하기 위해 와 있었다. 준희는 그녀 하고만 이야기를 했다. 영어가 짧아 늘 국영사전을 끼고 다니며 찾아서 우리말을 영어단어로 어떻게 번역되는 가를 일일이 찾아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인도에 오기 전에 학원에서 열심히 영문 잡지 <TIME> 반에 들어 읽고 번역하고 했지만 일상회화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기숙사에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이 많았으며 소수의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너 명 있었다.

 

준희는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절대로 한국인과는 말을 섞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므로 주로 독일에서 온 여성과 인도인들 하고만 어울렸다. 저녁 식사 후에는 으레 기숙사 경내 잔디밭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몇몇 한국인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준희도 한국이 그립고 음식이 그립고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한국말로 시원하게 떠들며 스트레스도 휙 날려버리고 싶지만, 꾹~ 참고 또 참으며 열심히 인도인과 독일인하고만 대화를 하며 어울렸다. 영어를 빨리 습득하기 위한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폭염을 피해 간 라다크에서-

대학에 들어온 후 몇 달 만에 첫 방학이 되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최강 풍속 선풍기가 머리 위 천장에서 센 바람을 내뿜어도 도저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정신집중도 어려웠다. 도무지 뭘 할 수가 없었다. 생각 끝에, 인도 북부  라다크(RADAKH) 중심지 레(LEH)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짧은 방학기간 동안 앞으로 쓸 박사 논문의 목차구성이나 내용의 방향을 요약해 작성해야 하므로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에서 목적달성을 하고자 비행기를 탄 것이다. 라다크는 인도 최단 북쪽이며 원래는 티베트 땅이었기 때문에 힌두 사원이 아닌 불교사원이 있고 인도인들이 아닌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아주 척박하고 고도가 높아 풀이나 나무도 없는 메마른 황무지였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인도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도가 높아 처음에는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비행장에 내리니 군인초소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공항 모든 절차가 군인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과 상황에 크게 놀라고 위축되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내 여권을 보더니 외국인은 이 지역이 출입금지 구역이니 당장 델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바로 아래 접경지역, 카쉬미르에 외국인 살해사건이 나서 당분간 외국인은 북부지역에 출입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준희의 여권을 압수했다. 델리로 돌아가야 주겠다는 것이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일단 여권을 빼앗긴 채 밖으로 나와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숙소로 갔다. 선해 보이는 티베트인은 준희의 이야기에 안타까워했다.

 

외국인으로서 여권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인도간지 몇 개월이 안되어 영어도 서툴렀고 더욱이 인도 힌디어는 한마디도 못하니 정말 큰일이었다. 별수 없이 여권을 내 손에 다시 넣어야 하는데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준희는 티베트인 주인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내일 군 초소로 여권 찾으러 가야 하는데 함께 가서 옆에만 있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군인만 있는 곳에 여자 혼자 찾아간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일단 옆에 누군가만 있으면 힘이 될 것 같았다.

 

다음날 군인 초소로 그와 함께 갔다. 준희는 따지기 시작했다.


"만일 카쉬미르에서 외국인 살인사건이 나서 출입을 금한다면 아예 델리공항에서부터 막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당신들도 잘못한 것인데 왜 외국인에게만 모든 잘못을 씌우는가??"


밤새워 작성한 영어로 유창한? 척 목청 높여 떠들어 댔다. 겁먹은 개가 더 짖어댄다는 이야기가 꼭 맞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신들도 잘못이 있다는 말에, 군인은 수긍하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여권을 줄 테니 3일 뒤에 델리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있으니 그걸 타고 떠나라는 거였다. 그리고는 여권을 돌려주었다. 이제 딱 3일이라는 여유를 준 것이다.

 

그 3일 내로 논문의 목차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델리에 돌아가서 지도교수에게 보여줄 수 있으며 그의 지도가 시작될 것이다. 델리는 너무 더워 에어컨 시설이 없는 기숙사에서는 도저히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에어컨은 고급 호텔에나 설치되어 있고, 관공서에는 그래도 선풍기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쿨러를 사용했다.

 

준희는 고도가 너무 높고 메말라 나무도 풀도 없는 높은 산 언덕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저 멀리 아래 마을이 보였지만 황무지 민둥산인 높은 고지의 산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 아래에는 여기저기 산봉우리 끝이 보지만 풀 한 포기 없는 텅 빈 우주 공간 같은 곳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참선을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너무 좋았다. 부처도 그 옛날에 이랬을 거라는 생각도 하며 긴 여유의 고요함에 잠겨 들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어떠한 소음도 없이 날씨 또한 쾌~청했다. 인도에 온 이후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로움에 행복감까지 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몇 걸음 아래 어떤 남자가 숨어서 준희를 엿보고 있었다. 준희가 눈을 뜨고 바라보니 황급히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준희의 심장은 갑자기 요동치며 뛰기 시작하고 공포에 젖어 어떠한 판단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돌입했다. 방금 전에 고요한 행복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꼭대기 위,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에 누군가가 쳐다보며 마치 기회라도 노리는 듯이 숨어있다는 사실은 죽음 같은 공포 그 자체였다. 더욱이 마을에서 많이 떨어져 높이 솟은 산꼭대기에 있으니 아무리 소리쳐도 아랫마을까지 들리지도 않는 거리였다.


준희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요동 없이 눈을 다시 감았다. 마치 여전히 선정에 잠겨 있는 것처럼. 그러나 심한 두려움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그 넓은 세상천지에 혼자 위기에 맞서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보니 여전히 그놈? 은 몸을 숨기고 고개를 내밀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기는 불심이 강한 티베트인들이 사는 지역이라 아마도 내가 부처인척? 계속해서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 보면 그만 포기하고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열심히 쇼?를 해야겠다. 준희는 마치 위대한 성자가 된 양 더욱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부좌 자세에 더 힘을 주어 당당하게 눈을 감은 채 선정에 든 것처럼 했다. 


세상천지에 숨을 곳도 기댈 것도 없는 위기에 처한 준희가 할 일은 오직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뭔가 결정을 하고 나니 숨쉬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그냥 무작정 그가 스스로 떠나기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 지난 것 같았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온 심신의 신경은 오로지 그가 있는 쪽으로 일제히 향해 있었다.

 

무슨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아 실눈을 뜨고 보니 그가 이제 서서히 털고 일어나 내려가는 게 보였다. 아마도 저 여자에게 감히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거 같았다. 포기하고 내려간다. 계속해서 요동 없이 그대로 앉아 눈만 뜨고, 그가 마을 언저리까지 닿는 것을 확인한 다음 준희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냅다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구르고 그 메마른 험준한 산을 마치 사생결단을 하듯이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왔다.

 

숙소에 와서 보니 몸 여기저기 넘어져 다친 상처 투성이다. 그제야 쓰라리고 아파왔다.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라다크에서 허용된 날짜는 단 하루가 남았다. 기적은 이렇게 이루어지는가~ 그 하루 동안 박사 논문의 목차가 쭈르륵 정리가 되었다. 마치 꿈같은 3일간의 시간이다. 폭염을 피한 도피에서 모든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아마도 명상에 들었던 그 공포의 하루가 크게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준희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그 힘든 고난?을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마치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해서 델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면서, 옛말에 ‘귀한 자식은 될수록 멀리 보내라’는 말이 떠오르며 그동안 겪었던 위기의 순간들을 넘긴 스스로가 몹시 자랑스러웠고 대견해 상까지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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