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체면적인 직업
체면적인 월급
모두 타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함정이다.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의 90%는 모두
인간 관계로 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학대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된다.
남들이 50평 아파트면 나도 그만큼
크기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고
물론 동력이 될수는 있다.
다만 살면서 큰 집에서 편안히 살수
있으면 그것도 행복이겠지만
그게 행복이라는 감정의 90%이상이
되어 버린다면 자신을 영원히
만족 못하는 돈 버는 기계
타인의 시선과 기준의 노예로 만드는 일이다.
삶의 중요도로 보면 건강이 80%이상이라 생각 된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기본이 되어 주지 못하면
운이 따라주고 기회가 주어져도
얻을수 있었던 수확의
80%조차도 얻을수 없고
오히려 삶의 95%이상을
건강을 회복하는데
병마와 싸우는게 허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는
생태계
먹이 사슬일 뿐이다.
허나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런 저런 정치체제와 사법 및 폭력기구를
설치 하여 균형이 지나치게 깨져
폭력사태 혹은 생태계가 지나치게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땜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직업 혹은 공무원을
택했으면
급여가 적고 가끔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 소모품 같다고 생각되는 허무함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리스크를 감안하여 창업하여 실패 하였다면 신용불량 채무 상환의 늪에 빠졌다면
그것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 할 운명이다.
어쩌면 모든게 운일수 있다.
취직이 안되어 시작한 작은 분식집이
대박나고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켜져
대박난 금전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수도 있고.
힘들게 공부하고 운좋게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서 수십년간
큰 스트레스 없이 꿀 보직을 옮겨 다니며
넉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공장에서 단순 노무일을 이십년간
하면 고생고생하다가
본인의 의지가 아닌 코로나 여파로
그 평범한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운명을
겪게 될수도 있다.
코로나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부침을 보았다.
잘 되면 식당들이 폐업하고
코로나 발생 반년 전에 2억 넘게
투자하여 식당 경영 하다가
일년간 밑지다가 결국 3억 넘게 날리는
사람도 보아왔다.
누구의 인생인들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할수 있을까.
그 누가 감히 난 운명따위에 굴복하지 않아
하고 소리 칠수 있을까.
각자 자기의 건강 집안 배경을 감안하여
자기에게 맡는 직업을 찾아
건강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 모두
축복받은 인생이라 생각 한다.
맞지 않는 상사
비전없는 회사
점점 줄어 드는 물량
문 닫는것이 시간 문제인
시한부 인생과 다름 없는
회사에서 자의반 타의반
회사 돌아가는 상황 전체를 알고 있고
다른 부서 내가 싫어하는
그런 부서에서 일년간 더
할수도 있었다.
그러기 싫었다
지쳤다.
충분히 여러가지 좋고 안 좋은 경험을
다했고
때론 억울함도 있었고
때론 뭔가 기여 했다는 보람과
보상도 있었고
하지만 그 과거에
분노하며 기뻐하며 살수는 없었다.
마침 이런저런 법적으로 해결할 일들과
심적으로 힘들었던 일들도
마무리 되었다.
그 어떤 일을 하든
내 몸이 내 맘이 감당하는 일이라면
운이 따라서 사업을 하게 되든
직장을 계속 다니던지
몸을 쓰는 체력일을 하든
기꺼이 운명이라 받아 들여
시작해 볼 결심이 섰다.
아직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고
체력과 건강이 따라주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눠주는 친구들이
그 길에 함께 하고 이끌어 주어서
더욱 든든하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
20년간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걸어 보려 한다.
조금 긴장도 되지만
기대도 된다.
하나님의 이끌어 주심과
가호가 있으리라 믿는다.
조용히 그제날 이야기 보따리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일터에서
겪게 되는 깨달음도 공유하면서
쉽지 않은 않을 그 길을
새로운 풍경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그 곳에
좀 더 먼길 좀 더 높은 그곳에
설레이는 맘으로 가보려 한다.
부모님이 싸주신
봇짐을 메고 새로운 여정에 나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