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교사도 복불복! 하지만 소중해!
학년말이 되면 교사들은 다음 해에 몇 학년으로 갈지 학년희망서를 낸다. 한 해 동안 학교에서 겪고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서 학생, 학부모, 자신이 선호하는 학년, 그리고 학년과 엮어놓은 업무의 난이도 같은 것을 고려하여 1에서 3순위 정도까지 학년과 업무 희망을 적는다. 몇 학년 학생들이 어려운지, 소문난 진상학부모는 없는지 알아보고 관성에 따라 내년에 어느 학년을 하면 무난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을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때 학교 내규에 따라 인사이동에 필요한 본인의 점수가 높다면 원하는 대로 지원하겠지만, 본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나보다 이동점수가 높은 다른 교사가 내 희망과 겹치지는 않는지 잘 알아보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최후의 보루처럼 존재하는 학년이 있으니 그게 바로 1학년이다. 정말 갈 학년이 없으면 1학년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1학년을 왜 기피하냐고? 물론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내가 맡은 반에 어떤 학생, 어떤 학부모가 있는지에 따라 한해살이가 고난과 역경의 1년이 될 수도 있어서 두려운 것이다.
학년말에 반편성을 할 때 학생들의 학력,수업태도, 교우관계, 사회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에 위 학년으로 올려 보낼 때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쏠림현상이 낮다. 물론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런데 1학년 반편성을 할 때는 아이들의 학력과 성격, 교우관계, 그리고 학부모의 성향을 제대로 알 수가 없기에 교사들 사이에 1학년 반편성은 복불복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 1학년 반편성은 뭘 보고 할까?
1월 가입학식날 교무실에 제출하는 신입생 가정환경조사서와 등본에 드러난 객관적 요소를 반별로 균등분배한다. 그리고 이건 1학년 담임을 해본 교사들의 경험에서 나온 팁인데, 되도록 같은 아파트 학생들이 한 반에 몰리지 않도록 이 또한 균등분해한다. 엄마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말들이 무성해지고, 멀쩡한 학생과 교사가 문제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해서다. 3명 이상이 뜻을 모으면 그것이 대다수의 의견인양 교사의 학급 운영에 관여하기도 하는 등 교권침해 비슷한 상황도 더 쉽게 일어나기에 엄마들의 커뮤니티 형성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가정환경조사서 ‘우리 아이에 대해 해 주실 말씀’ 란에 한글 미해득 여부를 적어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반별로 균등분배하는 부분이다. 기초 학력이 너무 낮은 학생들이 한 반에 몰리면 교사가 세세하게 개별 지도해 주기가 힘들뿐더러, 학급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활동의 종류와 수준도 하향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해 서술하는 곳에 아이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정성스레 적어주시는 경우 화목하고 편안한 가정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내용에서 어린이집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쓰며 누구와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 떼어놓아 달라 하는 경우 관심과 진상의 경계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 아이 첫 초등학교 생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쓰는 것은 무난한 느낌,
반면 이 칸을 뻥 비운 채로 제출하는 경우 자녀 교육에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1학년 신입생은 교사가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데이터가 없으니 환경조사서에 나타난 객관적 정보와 학부모의 관심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가입학식 때 직접 서류를 받는 교원들이 서류를 낼 때의 학부모의 인상을 보고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이한 경우에 해당한다. 요즘은 아동학대이슈로 인해 가입학식 때 예비1학년이 학부모와 동행해서 오는 것이 의무화되었으므로 이때 아이의 태도와 성향을 가늠해서 체크한 정보를 주기도 한다.
이런 정보들을 모아 2월 말에 예비 1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치열하게 반편성을 한 후, 다시 봉투에 블라인드로 넣고 반 뽑기를 한다.
난 1학년 담임을 두 번 해보았다.
첫 해에는 반편성을 하면서 왠지 마음이 가던 한 반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1년을 함께 해보니 처음이라 두려웠던 1학년 담임 역할에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만난 1학년 우리 반. 재작년 1학년보다 학생수는 적은데, 기초학력 부진은 4배가 되는 놀라운 반이었다. 아이들의 담임에 대한 애정 표현은 오히려 재작년보다 많았지만, 기초학력과 활동이해도가 낮으니 다양한 수업활동을 시도해 보는 것에 한계가 많아서 안타까웠다. 학년말에 이런 점을 반영해서 2학년 반편성을 했다. 그래도 유독 느린 학습자가 많은 학년이었기에 2학년이 되어도 어려움을 있을 것이다.
느릴수록 교사가 전문성 있게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투입해서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주고자 했지만, 한계가 많았다. 아이의 집중도가 낮고, 학습 내용을 이해하고 익히려는 동기와 의지가 약하니 학습효과가 잘 오르지를 않았다. 이런 학생일수도록 양적 투입을 늘려주어야 하는데 학교에서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 가정에서의 지도 병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학생일수록 가정의 협조는 미미하여 아이의 발달에 어려움이 많은 경우가 다반사다.
가정에서 관심을 가지고 교실에서 못다 한 과제를 집에서 봐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이가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응용하질 못했다. 지적장애 3급의 특수교육대상자임에도 아이의 부모는 지능검사결과를 불신하며 특수교육 신청을 보류하고 있었고 아이는 저 나름대로 뒤쳐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한 해를 보냈다.
반면 가정 사정으로 공부를 잘 봐주지 못해 한글을 모르는 채로 3월 입학을 했지만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하던 한 아이는 방과 후 두드림수업까지 보태어 1학년 말이 되던 무렵에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한글을 읽고 쓰고, 셈도 다 해내게 되었다. 1학년 와서 한글 배워도 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해준 아이였다.
같은 교사, 다른 학생을 겪으며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학년 반편성 미리 조정 부탁 가능할까?
교사인 나도 내 아이를 1학년에 입학시키며 당연히 학반은 배정되는 대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학부모 커뮤니티의 발전 때문인지 반배정 전에 미리 요청사항을 학교에 전하는 부모님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객관적 정보(성별, 주소지, 이주배경, 특수학생, 동명이인, 쌍둥이 등)를 살펴 신중을 기해 반편성을 한 후, 학부모에게도 입학 며칠 전에 전체 알림으로 자녀의 학반 정보를 발송한다.
한 번은 이렇게 학부모 전체 알림을 보낸 후 1학년 각반 담임선생님이 자기 반 환경조사서를 유심히 읽어보다가 뒤늦게 환경조사서 뒷면에 학부모가 별첨 해놓은 요구 사항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 남학생이 딸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으며 한 번은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갑자기 딸을 밀어서 딸이 굴러 떨어지게 되었고, 아이의 눈가 피부가 찢어져 꿰매기까지 했던 사건을 사진과 함께 첨부하며 부디 그 남학생과 같은 반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요구였고, 이미 안내한 반배정 명단을 보니 하필 그들은 같은 반이었다. 다시 배정하고 알림을 보내면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기에 너무 갈등이 되었지만, 그대로 반배정을 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과 민원 리스크가 더 클 것 같아 결국 반배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 여학생과 우리 반으로 배정된 여학생을 서로 맞바꾸기로 하였는데 우리 반의 누구를 보내야 하나 참 고민이 되었다. 짓궂은 남학생을 이겨먹을 당찬 여학생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신입생 환경조사서만 봐도 사랑받고 자라 야무질 것 같은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입학 후 만남이 기대되는 그런 여자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보내기로 마음먹고 명단을 조정했다.
다행히 우리 반에 온 여학생은 어린이집보다 초등학교가 훨씬 좋다며 잘 적응해 주었다. 나의 믿음과 아쉬움을 모른 채 옆반으로 가게 된 여학생은 내 예상대로 당차고 야무진 아이였고, 1년 내내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 마음에 잠시 품었던 우리 반일 뻔했던 그 아이, 응원한다.
-결국 1학년 반배정은 복불복인가요? 아닌 척 해도 결국 복불복인 것 같아요. 교사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하지만 복불복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다 알고 만나도 아쉬운 점은 있을 터, 함께 하는 1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교사도 아이도 함께 자라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