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 인연입니다
1학년 반편성이 입학식을 앞둔 2월 말에 이루어지는 한편, 2~6학년 반편성은 현재 학년 종업식 전에 모두 완료해 놓아야 한다.
현재 학년의 담임들이 모여 학년의 학생들을 가나다반 또는 ABC반으로 편성하고, 나이스 진급 학반에 입력해둔다. 그리고 종업식날 생활통지표를 배부할 때 학생 이름 옆에 내년 임시(가나다)학반을 수기로 기입해서 개별 학생에게 알려준다. 가반이 1반이 되는 것이 아니다. 2월 말 새학기 준비 기간에 새 학년의 담임교사들이 모여 자기 반이 될 학생 명단을 랜덤으로 뽑게 된다. 만약 4학년 1반을 맡게 된 교사가 (4-다)반을 뽑으면 (4-다)반이 4학년 1반이 되는 방식이다. 다 아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들어보면 뻔할 수 있는 진급 학반을 편성하는 과정을 더 살펴보자.
먼저 남녀 학생수의 균형을 맞춘다.
한 반에 남자가 많으냐, 여자가 많으냐 하는 것은 학급 전체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한민국 전체 성비와 상관없이 학교마다 학년별 성비에 차이가 있는데, 각 반의 여학생과 남학생 수를 진급 학년의 학급수에 맞추어 분배하는 것이 1순위로 할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반 여학생 13명, 남학생 12명이 있고 진급 학년이 4반까지 있다면 여학생은 3+3+3+4명, 남학생은 3+3+3+3명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수를 맞추어주고, 내년 가나다반에 모일 남여학생수도 최대한 균등하게 한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분배한다.
각 반 남학생, 여학생별 학력 순위대로 가나다반에 공평하게 배치되도록 한다. 교사들이 보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현행 학습내용에 대한 단원평가, 수행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하며, 이는 학생들의 평소 수업태도와 집중력, 과제수행력 등과 연결되어 있다. 진급 학반의 수업 분위기와 학습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객관적 정보인 평가결과를 우선적으로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성비와 학력 분포를 맞추고 나면 다음으로 같은 반이 되면 안 되는 경우를 살펴 조정한다. 동명이인, 쌍둥이 여부, 도움반 학생 같은 객관적 정보는 바로 반영한다.
(T적인 시각에서 90년대 일본영화 러브레터 속 동명이인 남녀 후지이 이츠키가 같은 반이 된 것은 교사들의 업무태반이었다. 그 정도는 똑디 하셨어야죠)
그 다음 제일 어려운 단계가 교우관계 반영이다.
만약 반에서 단짝 그룹을 만들어
“우리 내년에도 꼭 같은 반 되면 좋겠다.”
하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다음 해엔 다른 반으로 갈리기 십상이다. 교실에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붙여주게 될 것 같지만, 무리를 이루어 다른 친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위화감을 조성하게 될 경우 다음 해에 다른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그들, 주변 친구들, 다음 해 담임에게 두루 이롭다.
평소 서로 티격태격이 심하거나, 일방적인 괴롭힘, 누군가에게 눈치보는 느낌이 포착되거나, 특정 친구에 대해 고자질을 자주 한다거나 하면 그들 역시 되도록 갈라놓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
반면, 소극적이고 조용한 친구들이 단짝이 되어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웬만해선 다음 해에도 같은 반이 되도록 배려한다.
친구들과 별 갈등없이 무난하게 한 해를 보낸 친구들은 처음 편성한 대로 머무르거나, 어디 가도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보고 마치 조커 카드처럼 어려운 빈 칸에 배치되기도 한다.
내 아이가 모두가 기피하는 어떤 학생과 내리 같이 반이 계속 된다면 그건 아마도 아이가 타인과 갈등을 잘 빚지 않는 성품을 가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내 아이만 그런 아이랑 자꾸 한 반이 되는 것 같아 엄마가 더 억울하다면 아이에게 그 아이 때문에 힘들고 속상했던 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려보라고 해보시길 권한다. 만약 아이가
“난 별로 상관없는데? 걔가 좀 시끄럽긴 한데 뭐 괜찮아.”
라고 한다면 그냥 둘 일이다. 마음이 놓이는 반응이다.
아이가 엄마에게 선생님께 대신 좀 말해달라고 한다면 진짜 소심천만한 아이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그래도 학부모가 직접 전화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앞에서는 내색 않던 아이가 엄마를 통해 그런 전화를 해오면 속상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엄마를 통해 아이 생각을 듣는 것보다 아이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에 어차피 상황 파악을 위해 아이와 심도 있게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아이가 말로는 표현을 못하지만 어떤 아이와 절대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이유와 함께 편지에 적어 담임선생님께 전하는 방법도 권해보고 싶다. 너무 늦지 않게, 적어도 종업식 3주 전에는 의사를 전하는 게 좋다.
절대 필수 사항은 아니다. 내년 학급 편성에 대해 은밀한 부탁을 해오는 경우는 한 반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하다. 웬만하면 아이와 교사를 믿어보자.
현 학급 안에서의 교우관계를 반영했지만 진급학반에서 다른 학급 친구들과 섞였을 때 또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그 부분도 조심스럽다. 학급 수가 많을수록 난리가 난다. 누군가 서로 문제가 되어 바꾸고 나면 ‘얘들도 같이 있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또 바꾸고, 그러다 붙으면 안 될 아이들이 또 다시 붙고. 그렇게 몇 번을 서로 확인하고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며 확정.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어, 얘 둘이 같은 반이 되면 안 되는 거였어.’ 하는 경우도 꼭 생기곤 한다. 그래도 복기하면 그게 최선이었고.
- 그래도 학년말 반편성이 학력분포나 교우관계 면에서 1학년 반편성보다 복불복이 훨씬 덜 하죠?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별, 대한민국에 태어나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된다는 것은 굉장한 인연!
남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것으로 아름다운 한 해를 함께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