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건강해야만 한다고. 맞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근데 이토록 강력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닿지 않았다.
왜?
허구한 날 건강 이야기 해봤자 뒤돌아서면 배달어플을 켜고 3천 원이 넘는 배송비에도 간단히 무시한 뒤 오늘은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각종 성인병의 근원인 치킨을 고르고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침부터 머리가 두 조각 날만큼 머리가 아파왔다. 누군가 내 심장박동에 맞춰서 바늘로 오른쪽 머리통을 쑤시는 것만 같았다.
‘이거 진짜 안 되겠다.’
당장 팀장님께 연락드려 급하게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연차를 올려달라고 말씀드렸다. 오늘 하루만 이었으면 유난 떨지 않았겠지만, 두통이 서서히 심해진 것이 이미 1주일이 넘어있었다.
식은땀까지 날 것만 같자, 벌떡 일어나 부모님께 병원에 가야겠다고 외쳤다.
다들 처음엔 쉬쉬했다. 하지만 나의 경직된 얼굴을 보니 심각함을 느끼고 아버지께서도 주섬주섬 옷을 챙기셨다. 같이 가신다고 말이다.
아, 혼자가도 괜찮은데 싶었지만 함께 가기를 천만다행으로 여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오른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요.”
“신경과로 접수해 드릴게요.”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갔다. 아무래도 큰 병원이 나을까 해서였다. 병원 문이 열자마자 접수해서 인지 곧이어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아팠죠?”
“원래 평소에도 아팠는데… 1주일 전부터 심해지더니 오늘 아침에서 참기 힘들어서 왔습니다. 실은 진통제를 꾸준히 먹었는데도 차도가 별로 없었거든요.”
“오늘도 먹었어요?”
“아뇨, 한 1주일 전부터 한 알씩 먹었는 데 너무 자주 먹는 거 같아서…”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고 이야기해 봅시다.”
그렇게 진료실 문 밖으로 나왔다. 순식간이었지만, 내 손에는 어느새 ‘CT검사’와 ‘혈액검사’에 대한 내용이 담긴 종이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지끈거렸고 이 참에 제대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검사실로 향했다.
꽤나 긴 여정이었다. 채혈부터 시작해서 수술용 바늘을 팔에 다시 꼽아서 CT촬영을 위한 조영제를 투여하고 마지막엔 진통제라는 명목으로 링거까지 맞았다. 진료실로 다시 돌아오는 데까지의 시간은 2시간이 족히 걸렸다.
“진통제 맞으니까 어때, 좀 괜찮죠?”
“…네”
사실 이미 지쳐버려서 인지, 진통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몸 전체가 힘이 쭉 빠져 있었다.
“그것보다 조금 문제가 의심되는 부분이 하나 있어서요.”
순간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집중되었다.
“뇌동맥류라고 해서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말 미미하긴 한데 약간 의심이 되는 부분이 보여서… 확실히 하려면 대학병원에 내원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뇌동맥… 뭐?
진료실을 나와 함께 있었던 아버지는 말없이 차로 향했다. 그리고 따라서 타니 급하게 차를 몰며 어디론가 향했다.
“오늘 바로 가려고요…?”
“그럼 오늘 가지 언제 가.”
아직 난 정신이 없었다. 그냥 상황이 얼 떨떨할 뿐이었다. 후에 찾아봤지만 ‘뇌동맥류’라는 것이 시한폭탄과 같아서 터지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징후라고 했다.
대학병원은 너무나도 붐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그 속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서서 가서나 혹은 실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얼굴을 하나 같이 굳어 있었다. 나와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얼굴이었다.
당일 접수였기에 거의 4시간은 기다렸다. 오후 끝자락이 되어야 내 이름이 불러졌고 집 앞 병원에서 촬영한 CT를 들고 진료실로 향했다.
컴퓨터에 띄어진 나의 뇌혈관 사진을 그 방에 있던 모두가 함께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 그리고 의사가 입을 열었다.
“참 다행이죠?”
“…?!”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제 소견으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정상'이라는 말에 다시금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한마디 듣기가 이토록 어려 웠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찰나였다.
“이거 피검사 한 결과지죠? 근데 간수치는 왜 이렇게 높게 나왔데?”
진료의뢰서에 달려있던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고 말을 했다. 사실 전에 병원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CT결과가 더 시급했기에 까먹고 있었다. 의사는 곧이어 소화기내과로 연결해 줄 테니 한번 진료받아보라고 했다.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그 미로처럼 복잡한 대학병원의 병동을 돌아서 새로운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그때가 거의 오후 4시였다.
결론은 없었다. 또다시 검사를 통해서 확인을 해보자는 답이었다. 하지만 당일은 예약이 다 차 있었고 다른 날에 와야만 했었다. 솔직히 이미 지쳐버려서 더는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한편에 두고 아버지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를 타고 나섰다.
“니 때문에 내가 더 머리가 아파졌다, 이놈아.”
아버지의 농담 섞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건강이 최고다. 건강 못하면 아무것도 쓸모없다.”
그렇게 매번 듣던 같은 말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리고 마음으로 빌었다.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인지, 소원을 비는 것이 이미 늦어 버린 것인지. 근데 그 결말이 무엇이 되건 간에 하나는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