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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리 Aug 25. 2024

사라진 결승선

어린 엄마가 꿈꿨던 것

197X년

어쩌면 이것은 나의 마지막 질주였는지도 모르겠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함성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2번 주자가 바통을 들고 달려왔다. 나는 바통을 건네받자마자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앞서가던 다른 팀의 주자들을 하나씩 추월하며,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다음 주자를 향해 달려갈수록 내 심장은 더 세차게 뛰었다.

 첫 번째로 마지막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는 데 성공했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지막 주자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환호 속에서 우리 반 친구들은 함께 이룬 승리를 만끽했다. 우리는 자랑스럽고 날아갈 듯이 기쁜 마음에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멋진 역전이었다며 칭찬해 주시는 선생님의 말에 내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멋진 육상선수가 되는 것이 꿈인 내게, 이 작은 운동장에서의 승리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언젠가 큰 대회에 나가 진짜 트랙 위에서 달릴 수 있겠지. 그때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를 인정해 주실 거야.

        

 얼마 후,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한껏 웃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 선생님께서 전국소년체전에 나가보라고 제안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전국대회라니! 이렇게 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꿈만 같았다. 비록 대회에 나가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내 마음은 광활한 트랙 위를 달리고 있는 듯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를 찾았다.


 “오빠! 어딨어!”

 “혜자야 학교 다녀왔니?”

 “오빠 들어봐, 오늘 선생님이 나에게 전국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셨어!”


 한껏 들뜬 모습으로 달려가 이야기를 전하자, 오빠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국대회라니, 우리 혜자 정말 대단하네."


 오빠는 언제나 내 꿈을 응원해 주고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오빠의 따뜻한 격려는 내 가슴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날이 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또 달리기? 계집애가 운동해서 뭐 하게? 대회는 꿈도 꾸지 마! 쯧, 재수 없게...”

  

 어머니는 나를 매섭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어머니... 저는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혹시나 또다시 매질을 당할까 두려웠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동생들 돌보고 집안일을 돕는 거야. 넌 그냥 국민학교까지만 다니고 집에서 엄마를 도와야 할 거다.”


 어머니의 매정한 말에 내 존재가 산산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머니는 내 꿈도, 미래도 모두 부정해 버렸다. 가슴이 아팠고 눈앞은 눈물에 뿌옇게 흐려졌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는데 자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분명 며칠 전 운동회에서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듯했다.

 오빠는 울고 있는 내 곁에서 한참을 위로해 주었지만, 어머니의 말은 아직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인데,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난 거지?'


 나는 한참 동안이나 천장에 드리워진 어둠을 바라보다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끝없이 달리고 있었지만, 다다를 수  없는 결승선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나는 혼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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