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 숨은 소녀
어린 엄마가 무덤보다 무서워했던 것
오늘 밤도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리고 제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 아버지의 거친 욕설과 쿵쿵대는 발소리는 공포스러웠다.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언제나 그랬듯 화를 내며 날 찾고 있었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문은 열렸고, 아버지는 술병을 들이밀며 말했다.
"술 더 사와, 술!"
늦은 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시간에 고작 열 살 이었던 나에게 술을 사 오라며 아버지는 내쫓듯이 집 밖으로 내보냈다. 어머니는 그저 빈 껍데기처럼 체념한 듯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가게 문 연 곳이 없어요. 아버지..."
내 말에 아버지의 눈이 순식간에 분노로 가득 차며,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술을 사 오겠다고만 말한 채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버지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를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어느덧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뒤돌아서 집이 아득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무거워진 다리와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은 뒤로한 채 눈물이 하염없이 터져 나왔다. 정신없이 흐느껴 울다 보면 어두운 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내 울음을 달래주는 듯 찬찬히 불어왔다. 이곳은 나를 아버지로부터 숨겨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아버지가 여기까지 나를 찾으러 오지는 않을 테니까.
묘지 뒤에 숨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 주는 차가운 공기와 묘지의 스산한 바람에 이제야 몸이 으스스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 무덤에 내 몸을 숨기는 것뿐이었다.
내 얇은 팔에는 전날 아버지가 때린 자국이 여전히 까맣게 남아있다. 몸도 마음도 상처 투성이가 되어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에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고작 열 살 밖에 안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무덤 뒤에서 혼자 울고 있던 나는,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친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 우리 오빠였다. 아버지에게 내쫓기듯 도망쳐 나온 나를 오빠가 찾으러 왔다.
“혜자야!”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빠를 불렀다.
"오빠.."
나는 그의 품으로 달려갔고, 오빠는 내 등을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여기 있었구나. 괜찮아, 괜찮아."
따뜻한 오빠의 목소리에 나는 또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눈물로 오빠의 옷이 다 젖었지만, 오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더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오빠의 따뜻한 품 안에서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오빠는 조용히 말했다.
"혜자야, 많이 무서웠지? 아버지 주무시러 들어가셨어. 우리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오빠, 나 너무 무서워. 집에 들어가기 싫어."
"나도 알아, 혜자야. 그래도 내가 함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었고,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나는 오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아버지로부터 날 지켜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편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어두운 밤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