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무례해지는 계절이 왔다. 베란다와 거실 창을 꼭 닫고, 창에다 두터운 커튼을 쳐도 무에 그리 궁금한지 굳게 닫힌 창틈으로 재주 좋게 들어온다. 허락 없이 들어왔으면 얌전할 것이지, 결계를 뚫고 은밀히 숨어들어온 바람은 한여름 내 발 등을 괴롭히던 모기처럼 들러붙어 소름 끼치게 한다.
올봄에 이사 온 이곳 바람도 여름엔 얌전했는데, 새벽이 게으름을 부리는 계절이 다가오니 극성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거실창의 기다란 세로 부분에 거뭇한 흔적을 보니 끈적한 무언가를 붙였나 본데, 아마도 한겨울 치열한 공성전을 벌인 모양이다.
극성을 부리는 바람만 아니라 서늘한 계절이 왔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내 정강이 주변에 걸려있는 얇은 여름이불. 그리고 지난 8월 말부터 책상 옆에 붙박혀 있는 선풍기.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기만 해도 겨드랑이와 등허리가 끈적해지던 한여름밤에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필수품이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상옆에 있던 선풍기를 내 침대 곁으로 바싹 당겨 붙여야 했었다. 내 머리카락과 희끄무레한 가느다란 솜가락같은 먼지가 쌓인 선풍기는 밤새도록 고개를 회전하며 내 발끝부터 얼굴까지 강한 바람을 뿜어대야만 했었다. 그러다 날이 새면 잠시 쉬는 그런 중노동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많은 여름이불은 날이 후끈해지면 침대와 벽 틈바구니에 구겨져 있거나 아니면 내 발버둥에 밀려 침대 바닥에 처박혀 지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 연휴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한 여름이불이 내 정강이 언저리에 걸려 있었다. 발에 차여 바닥을 천덕꾸러기처럼 뒹굴다가, 내가 서랍을 열려고 할 때마다 걸리적거리던 여름이불이 차츰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름의 꼬리와 가을의 실루엣이 겹치는 계절이 되니 슬금슬금 내 몸을 더듬거린다.
세상은 깨를 벗고, 사람은 두툼해지는 그런 계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