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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May 27. 2022

늘어진 낡은 양말

길을 걷는데 자꾸 양말이 거치적스럽다. 양말이 뒷꿈치 끝트머리에서 까불거린다.


아침에 양말을 신으려 옷 서랍을 열어보니 짝잃은 외톨이 양말만 뒹굴고있었다. 엊그제 수건때문에 빨래 돌려야지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을 어디다 팔아먹었을까? 혹여 걷지 않은 양말이 있을까 창문을 열어봤지만 역시나 건조대는 휑하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에 신었던 양말이라도 신을까 해서 난잡하게 쌓여 쉰내를 풍기는  빨래더미를 뒤적였다. 이리저리 헤집어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양말을 찾아냈지만, 깔끔병이 도졌는지 짜증섞인 한숨으로 다시 빨래통에 골인.


이사 오면서 다른 옷틈에 숨은 양말이 잊을까 괜한 기대를 하며, 서랍 속 옷들을 맹렬히 헤집었다. 탁. 탁. 없다. 이제 마지막 서랍인데, 여기에 없으면.... 다행히 두툼한 옷 사이에 낑겨 있던 양말 한 켤레를 찾아냈지만, 겨우 찾아낸 양말인데 반갑기보단 난감하다. 목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 실지렁이같은 가느다란 고무가 초라하게 삐죽한 낡은 양말이었다. 하아... 이건 신기 싫은데.


예전 아버지나 형이 신던 양말을 돌려 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아니 돌려신었다기 보단 집을 빨리 나서는 순서대로 그나마 상태가 좋은 양말을 신고 나갔다. 내 순서는 대부분 마지막이었기에 가장 낡고 고무줄에 힘이 없는 흐물거리는 뒷꿈치가 닳아 망사같은 양말이 내차지였다. 그당시 어린애 양말은 따로 사지 않았던 가난한 어린 시절, 양말을 잡아당기면 무릎을 넘어 그 위까지 넘보는 커다란 장화같은 늘어진 낡은 양말을 신고 학교를 다녔다.         

  

옷틈사이에서 발견한 늘어진 양말을 신으면 얼마 걷지 않아 발목에서 줄줄 흘러내릴게 뻔했다. 남자치고 손목과 발목이 가늘어 나름 컴플렉스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발목이 딱 맞는 양말을 계속 고집해 왔었다. 한데 예전 잊고 있던 낡은 기억을 소환한 늘어진 양말을 어떡하면 좋을까?                                      


길을 걷는데 집중하다 어느순간 양말이 복숭아뼈 어림에 걸쳐 있는걸 깨달았다. 이 상태로 계속 걸어가면 분명히 발 뒤꿈치까지 내려갈테고, 그러다가 결국 발바닥 중간까지 한없이 내려갈텐데 어떡하지? 지금 허리를 숙여서 자연스럽게 끌어올릴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모를지도. 지금은 이렇게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 뒤꿈치까지 내려간 양말을 잡아당길 시기를 엿보고 있지만, 어릴땐 이런 눈치따윈 보지 않았었다. 다만 귀찮고 불편했을뿐. 만약 길을 가다 나혼자 내려간 양말을 잡아당겼다면, 어렸던 나도 창피해 했을수도.


하지만 내 주변 친구들도 나와 같았기에 그런 사춘기적 촌스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어릴적 내가 길을 걷다 줄줄 흘러 내린 양말을 끌어올리면 친구 역시 내 행동을 따라 했었다. 마치 잊고 있었는데 생각났다는 듯이.


아침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낡고 늘어난 양말을 신고 집을 나왔었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아침에 늘어진 양말을 들고 고무줄이라도 채울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유난 떤다싶어 관뒀었다. 그런데 지금 내 뒤꿈치까지 내려간 양말을 보며 후회하고 있다. 고무줄 아니 테이프라도 감을 걸. 양말을 잡아당기고 싶은데,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다.


후우... 아직 한참 갈길이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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