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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un 21. 2022

낡은 시외버스 터미널  

나는 옆 도시의 국립대학을 다녔다. 나는 수도권에서 한참 먼 지방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엔 다니길 원하던 학과가 없었다. 그래서 고속버스로 40분 거리 옆 도시 국립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내가 사는 곳의 버스터미널은 도로를 마주하고 있어서, 많은 차와 사람이 오가는 대중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지방 소도시의 한물간 극장이나 음습한 붉은 간판이 걸린 야릇하고 허름한 간판이 걸린 술집도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매일 다녀야 할 옆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은 삼류 액션 영화에서나 볼듯한 왁자지껄한 잡음과 시큼하고 고소한 그리고 텁텁한 냄새가 풍기는 장소였다.

 

오래된 시외버스 특유의 울렁거리는 토사물 냄새가 짙게 베어있는 낡은 버스에서 내려 버스터미널에 들어서면, 지방 소도시 특유의 나른함과 북적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의자에 앉아서 물끄러미 창밖 버스를 기다리는 늙수그레한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지루한 어린아이. 옆으로는 콧김을 뱉으며 내 앞을 뒤뚱거리며 지나치는 자그마한 할머니. 인근 시골에서 고추를 빻러왔는지, 자기 몸의 서너배는 넘을것같은, 바싹 마른 고추가 가득한 커다란 비닐 덩어리를 이고 뒤뚱이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 터미널 앞에 방앗간이 있었지. 지날 때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반질한 랩에 싸여 있던 넓적한 인절미 탑.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튀어나온 이빨처럼 걸리적거렸던 방앗간 좌판. 작고 기운찬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향하는 곳은 아무래도 그곳이겠지? 자비없고 서러운 노동에 한쪽으로 어긋나 버린 골반.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끈적한 파스를 골반과 허리어름에 서너장 붙이고 새벽잠을 설쳤겠지...


햇살의 풍요를 한껏 빨아들여 반들해진 붉은고추를 투명한 비닐이 찢어질 정도로 팽팽히 우겨넣은 커다란 짐덩어리를 구경하며 생날빛이 내려쬐는 터미널밖으로 향했다. 짭짜름한 오징어 냄새와 지릿한 지저분한 하수 골목길 냄새가 가라앉았던 내속을 다시 뒤집어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에 얼룩지고 달아버린 허연 계단 두어 개를 내려가면, 비바람과 햇볕에 삭아 지저분한 전단지와 스티커로 지저분한 전봇대에 기대어 있는 리어카가 보인다. 리어카에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부표처럼 생긴 커다란 은색 보온통이 밝은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보온통 옆에는 지멋대로 들어가고 비틀어진 때묻은 양은 냄비에서는 하얀 수증기를 길게 나풀거리며 고소한 번데기 냄새를 풍기며 펄펄 끓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찌그러진 양은냄비에서 흘러나온 고소함을 담은 연기는 지나는 행인들 걸음을 방해하며 허공으로 흩어지며 골목냄새를 더욱 잡다하게 만들었다. 진한 햇볕에 지워지는 연기를 멍하니 쫓다보면 맞은편에 영화 세트처럼 세월에 곰삭은 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 특선 방화에서 본듯한 낡은 극장은 왠지 쿰쿰한 곰팡이 내가 날 것 같은 시커먼 입구를 열린 채 덩그러니 있었다. 마치 숲속에 흉물처럼 남은 커다란 고목처럼...  낡은 극장의 모습은 쨍한 햇볕도 차마 음습함을 지워내지 못해 포기한듯한 그런 늙은 모양새지만, 요즘엔 자주 보지 못한 멋들어진 생생한 외화 포스터가 이름표처럼 걸려있었다. 다소 촌스러운 화장을 한 코가 뾰족한 금발 여인이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지만, 누가 저 음습해보이는 낡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의심했지만, 변두리 감성이 짙은 낡은 극장의 매표원이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는지 극장 안에서 사람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이름도 생소한 동시상영이라 적힌 나무 푯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 여인을 바라봤다. 왜 극장 포스터의 그림은 저렇게 촌스러울까? 하지만 왜 저렇게 아련히 나를 쳐다보는 걸까?


촌스러운 마스카라를 한 여인의 금발을 닮은 노르스름한 쨍한 햇살은 사람들은 재촉하며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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