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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Aug 16. 2023

몹쓸 똥물이! 입술에 닿았다.

새미를 만나야겠다. 아니 문을 부숴서라도 만나야만 했다. 혹시나 혹시나 그녀가 죽었으면 어떡하나 가끔씩 끔찍한 생각이 찾아올 때도 있다. '오늘은 무조건 너의 집에 갈 거야. 문 좀 열어줘!' 부탁보다 명령에 더 가까운 메시지를 보냈다. 새미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1초도 걸을 수가 없다. 걷기도 불편한 데다가 집 문턱과 보도블록, 슈퍼. 가는 곳곳마다 자꾸만 넘어지다 보니 집으로 꼭꼭 숨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우울증 약부터 관절염과 통증약까지 하루에도 수십 알의 약을 먹어가며 긴긴 겨울잠을 잔다.

 

새미를 보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하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근데 왠 걸? 뒷문이 열려 있었다. 뒷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 나온다. 설거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말은 새미의 싱크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언제부터 던져 놨을까. 제일 밑바닥에 찌그러진 플라스틱 용기에는 검푸른 곰팡이가 남겨진 밥풀사이를 뒹굴고 있었다. 새미를 보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얼굴도 있었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얼굴 또한 숨길 수가 없어 보였다. 

"어제, 오늘 밥을 못 먹어서 아사할 지경이야."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뚝뚝 떨어뜨릴 것처럼 울먹였다. 다행히 비닐 랩만 벗기면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 있는 음식이 냉장고에 있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인도 카레와 하얀 밥을 내밀자 새미는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새미는 나의 첫째 언니와 나이가 같다. 피부색과 언어, 생김새는 전혀 달라도 새미를 보고 있으면 언니 생각이 난다. 365일 죽어라 일만 했던 언니는 어쩌다 허리를 삐끗했다더니 몇 달째 방 안에서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 그것도 억울한데 일 나가질 않는 다음날부터 강제 퇴사를 당했단다. 새미가 우리 언니였다면 고민도 없이 벌써 설거지를 끝냈겠지. 새미를 두고 나갈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 일을 저질렀다. 


"새미야, 내가 너희 집에서 일을 할게. 나한테 일당을 주면 어떨까?"


며칠이 지나고 새미는 그렇게 하자고 연락이 왔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만 하기로 했다. 출근 첫날, 새미한테 인사를 건넸다. 

"나 왔어. 청소 시작할게."

윗 층에 누워있던 새미가 그러라고 소리를 쳤다.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제일 먼저 부엌에 쌓여있던 설거지를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릇들을 하나 둘 씻다 보니 어느새 하얀 바닥이 드러났다.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도 버리고 재떨이도 뽀득뽀득 소리 나게 씻었다. 음식물 자국이 남겨진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빵가루와 빨간 소스가 달라붙은 오븐 트레이 안팎까지 안티박테리아를 뿌려가며 빡빡 닦았다. 곧이어 부엌 시멘트 바닥도 쓸었다. 구석에 쓰러져 있는 검은 쓰레기봉투들도 나름대로 분리수거를 하고선 밖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말이 넣은 거지 쓰레기가 어찌나 많던지 뚜껑이 닫히질 않아 간신간신 올려놓았다. 입이 벌려진 쓰레기통에서 파리들이 신나게 윙윙거린다. 그래도 한 시간 전보다 깨끗해진 부엌을 마주하니 목구멍에서 막혔던 게 확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새미를 보러 이 층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일렁이는 화창한 아침이었지만 새미 방은 어제 머물었던 밤이 떠나지 않은 듯 여전히 어두웠다. 이불을 덮고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새미의 얼굴이 새 하얗다 못해 파란빛이 돌았다. 새미는 삼일 전, 샤워를 하다가 또 넘어졌단다. 다리에 시꺼먼 멍이 들었고 퉁퉁 부어서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행히 아침에 의사가 다녀갔고 약 처방과 함께 병원 예약도 끝낸 참이었다. 아프다고 울먹이는 새미를 다독이면서도 어디선가 똥냄새가 올라와서 토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화장실 문이 열려서 그런가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장실은 아래층에 하나밖에 없었다. 새미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는 말은 깊은 해저 바다를 산소통 없이 내려가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었다. 통증이 심하다 보니 침대 옆에 있는 일회용 변기에다 며칠째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똥 치우는 건 내가 할 영역 밖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족도 없는 새미를 두고 모른 척하며 집으로 간다면 하루종일 양심이 난리 블루스를 칠게 뻔했다. 


"내가 치워줄게."


숨을 살짝 멈춘 채 일회용 변기를 두 손으로 들었다. 똥물이 철렁철렁거렸다. 넘칠까 봐 단단히 손잡이를 붙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왔다. 옅은 회색 카펫을 간신간신 피하고 가쁜 호흡을 조절해 가며 화장실까지 기특하게 잘 왔다. 문제는 똥물이 튀지 않도록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이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변기 뚜껑을 열고 두 손으로 최대한 천천히 부었다.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바람에 고개를 획 돌렸다가도 타깃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다시 똥물을 쳐다보며 가만가만 부었다. 그런데 기어코 큰일이 터졌다. 일회용 변기의 바닥이 보일 무렵 똥물이, 그 몹쓸 똥물이. 내 입술에 닿았다. 바보같이 베이지 웃옷을 입었던 내 가슴에도 툭 툭 툭 튀었다. 이런. 구역질이 났다. 일회용 변기통을 우주 밖으로 휙 집어던지고 싶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남의 똥물을 치우고 있다니. 식식대며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했다. 저녁밥을 대충 만들고선 저녁을 먹는데도 어디선가 똥냄새가 났다. 밥 맛이 뚝 떨어졌다. 똥물에 몸과 마음까지 소진된 상태였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글쪼글해서 침대에 누웠다. 이리 눕다가 저리 돌아 눕기를 반복하다 일찍 잠이 들었다. 


아침에 큰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영상 속의 언니는 씩씩거리며 낙산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와 산책을 하고 있단다. 거동이 불편한 아빠와 걷는 속도가 같으니 말동무가 되어 좋다고 했다. 살 거 같은 하루를 맞은 언니가 웃고 있었다. 넉 달 동안 눈만 껌벅거리며 누워 있었던 언니가 지금처럼 걸을 수 있었던 건 그 옆을 지켜줬던 엄마 때문이었다. 아무리 혼자 살 수 있다고 떵떵거리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 살 수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날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침 한번 꼴깍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 숨 쉬기 힘들 만큼 무서움이 엄습할 때도 누군가가 옆에 있음이 살 것 같은 하루를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언니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 


다음 주에도 새미를 보러 갈 것이다. 새미 방으로 따뜻한 햇살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온 한 줄기의 빛이 그녀의 방에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살 거 같은 하루가 죽을 것 같은 하루 보다 조금이라도 많아졌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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