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SUMMERLEE'(서머리)를 방문했다. 영국의 '산업 및 사회 역사박물관'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1836년,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제철소가 설립된 곳이고 무엇보다도 사천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던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스팀 기차와 함께 철강가공에 사용했던 단단하고 웅장한 쇠 덩어리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뒤쪽으로 '탄광 역사촌'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19세기 탄광으로 쓰였던 곳을 그대로 두어 일반인에게 관람할 수 있도록 내부를 열어 두었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은 노란 안전모를 쓰고 안내원을 따라갔다. 한 안내원은 제일 앞에서 두 번째 안내원은 제일 뒤에서 우리는 소풍을 떠난 병아리처럼 한 줄로 나란히 섰다. 종종걸음으로 모두가 좁은 갱도로 들어서자 두 번째 안내원이 갱도의 입구를 닫아 버렸다. 먼지 만한 빛마저 사라지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옆에 있던 6살 아들이 내 허리를 더듬다 꼭 끌어안았다. 소풍은커녕 섬뜩했다. 안내원은 바로 손전등을 켰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딧 불만한 불로 새까만 석탄을 어떻게 캐야 했을까. 좁은 갱도 안으로 더 들어 갈수록 냉랭한 공기 때문에 오돌토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미 비가 많이 오고 난 후라 어떤 곳은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채광 굴마다 조각된 광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광부는 갱도를 뚫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쥐고 있었고 한 광부는 돌벽을 향해 망치를 들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다 보면 몸을 공벌레처럼 웅크려야지만 들어갈 수 있을 작은 구멍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에 있던 광부는 옆으로 납작하게 누운 채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벌거벗은 등 뒤로 긁히고 찍히고 멍든 자국들로 가득했다.
지하로 깊이 내려갈수록 갱안의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게 된다. 습도도 매우 높아서 옷을 입고 작업하기엔 불가능하다. 옛날에는 탄가루 흡인 방지를 위한 방진마스크나 파편이 눈에 튀는 걸 보호하기 위한 안경도 없었다. 그렇게 광부들은 집에서 가져온 빵 몇 조각을 먹으면서 하루 13-14시간 동안 일을 했단다. 당시 광부들의 일당은 시간당이 아니라 석탄을 캐 온 그람당으로 받았다. 죽어서 나가떨어지지 않는 한 무조건 일하러 가야 했다. 그때 광부의 평균 수명이 마흔 살이라고 안내원이 말했다.
15분 후 우리는 다시 밝은 세상으로 올라왔다. 납작하게 누워있던 광부의 등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 등 같아서였을까.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렸을 적 살았던 집, 거실 위에 걸려있었다. 사각형 액자 안에서 혼자 뒷짐을 지고 담담하게 서 있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광복 후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건 기적이었다고 아빠가 말했다. 일본에서 광복이 됐는지도 모르고 지하 갱도에서 며칠 동안 죽도록 석탄만 캤다던 할아버지. 유일하게 해가 뜨고 지지 않는 지구의 노른자 같은 곳에서 그는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일본의 어느 지역, 어떤 광산이었는지 광부로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고 한다. 그 외로움과 두려움 또한 어둡고 새까만 갱도의 깊이만큼이나 깊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광부였다고 말했다. 자꾸만 콧등이 시큰거렸다. 괜히 말했다. 차의 앞창문이 자꾸 뿌예져서 운전하기가 어려웠다.
영국의 최대 탄광이었던 놀스 욕셔(North Yorkshire). 2천 명의 광부들이 800미터나 되는 깊은 갱도에서 일했었다. 2015년, 놀스 욕셔 탄광이 폐쇄된 이후 영국은 더 이상 석탄을 캐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도 네 개의 광산이 남아 있다. 예전의 환경조건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햇빛을 등진채 땅 속 깊은 곳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직진은 애처롭고 고되기만 하다.
오늘 저녁에도 밥상 위로 하얀 등이 켜졌다. 도란도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보통의 하루가 햇빛을 포기한 사람들의 땀과 노동이 녹아져 만들어진 에너지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 에너지로 뜨끈뜨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따뜻하게 데워진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사진으로만 내 머릿속에 저장된 할아버지. 오늘만이라도 꿈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나의 자랑스러운 광부 할아버지. 어색해서 서로 할 말을 찾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할아버지의 등을 그저 토닥거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할 일이다.
거울 앞에 서서 (전문) (임길택)
아버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앞자리의 아저씨가
물어봤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바보 같으니라고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