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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Sep 29. 2022

나는 바닷가로 장 보러 간다

저 멀리 감춰졌던 커다란 바위가 웅장하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장갑을 끼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는다. 쇼핑하러. 커다란 면가방에 큰 가위도 챙겼다. 바닷가 장은 백화점보다 백배 스릴 있다. 조그마한 돌들 위로 해초류가 벌러덩 누워 있으니 미끌거릴 때마다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리저리 새어 들어오는 바닷물도 두렵지 않았다. 집채만 한 바위 밑으로 초록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조심조심 비좁게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앉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다. 실수로 이 광활한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그 누가 나를 구해줄까나. 전화기도 없는 데다 남편한테 알리고 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다리에 힘을 주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가만히 바위를 보고 있자니 실실 웃음이 나온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 물아래로  널브러진 다시마가 머리카락 같아서. 뚝뚝 가위로 잘라 낼 때마다 바위 전용 미용사가 된 기분이다. 

'바위야 시원하니? 내가 시크하게 깎아줄게.'

한참을 앉아서 머리를 다듬어 줬다. 덕분에 면가방 밖으로 다시마 머리카락이 넘쳐났다. 파도도 마음에 드는지 자꾸만 내 장화를 처얼썩 치고 돌아간다. 걸어 나오면서 잔디처럼 깔려있는 이름 모를 기다란 바닷말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신선한 바다향기가 온몸으로 퍼져간다.


이번에는 다른 가방을 들었다. 파래를 찾으러. 해변가 주위를 걷다 보면 넙적한 돌 주위로 초록 파래가 예쁘게 나불거린다. 나 좀 쳐다봐 달라는 눈빛으로. 모래가 섞이지 않도록 살포시 뜯었다. 매콤 달콤한 파래. 무침을 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에 군침이 돈다. 


마지막 쇼핑 가방에는 사슴의 꼬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바다 나물, 녹미채. 톳을 뜯었다. 어떤 각도로 톳을 보느냐에 따라 초록 카펫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위 위로 솟은 초록 모호크 헤어 같기도 하다. 밤새 머물렀던 바닷물이 마실을 나가고 태양빛에 고시란히 온몸을 쬐고난 톳이 바짝 말라있다. 짭짤하고 고소해서 과자처럼 씹어 먹기도 한다. 아는 척하며 어떤 날은 남편한테도 건네주었다. 바다 스낵이라며 많이도 먹었었다. (나중에 안 사실, 톳은 독성이 있다고 해요. 데쳐서 먹도록 합시다.)


집으로 가져온 다시마를 곱게 펴서 빨랫줄에 널었다. 창문을 열고 있으니 바다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텃밭에 심어 놓은 무를 뽑아 섬뻑섬뻑 채를 썰었다. 무와 빡빡 씻은 파래를 조물렀다. 배를 타고 한국에서 온 귀한 고춧가루도 뿌렸다.(아까워서 조금만) 훈훈한 흙냄새와 비릿한 바다 냄새가 입안에서 북적거린다. 남편도 아이들도 맛있다고 난리를 친다. 순간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잘 생긴 갈치 한 마리를 팔랑거리며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일로 오이소. 겁나게 싱싱합니데이" 

엄마가 두어 마리 생선을 봉지에 넣자 옆에 있던 파래도 한 주먹 덤으로 넣어 주셨다. 치글치글 바삭하게 구워진 갈치와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간 매콤 달콤한 파래무침이 밥상에 올라오면 밥 한 공기는 뚝딱 해치웠더랬다.


바닷가에서 본 장은 저녁 식탁에서 과거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를 불러오게 했다. 앞으로 다시마를 펄펄 끓는 냄비 속에 넣을 때나 오드득 오드득 입안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시크한 바위가 생각날 테다.


왼)빨랫줄에 말린 다시마 중간) 이름모를 기다란 바닷말(이름이 뭘까요? 오) 무우와파래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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