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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Oct 26. 2021

이웃나라말의 숲/이바라기 노리코

아빠와 일본친구 코나미

 우리 아빠는 해방둥이다. 아빠가 입버릇처럼 “너희 할아버지는 일본 탄광에서 일했었지.”라고 시작하면 6.25 전쟁부터 보릿고개까지 아빠의 인생이 파노라마 3D처럼 펼쳐진다. 뻔하고 진부한 스토리가 밥 세 끼 배 터지게 먹고 뒹굴뒹굴 구르던 나에게는 어린 왕자가 사는 별만큼 멀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로 1m, 세로 90cm 사람이 설 수조차 없는 비좁은 지하 바닥에서 할아버지는 광복 한 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기쁜 소식을 들으셨단다. 


 “집에 차 있는 사람?” “컴퓨터 있는 사람?” 초등학교 때 뜬금없는 선생님의 질문에 멋쩍게 손을 올려 부러운 눈길을 한 몸에  받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검은 머리 아빠는 손에 얼룩 하나 묻히지 않고 윤기 흐르는 차를 몰았었고 흰머리 아빠가 되면서 주유소 일을 서툴게 시작하셨다. 지워지지도 않을 기름 떼를 아침저녁으로 뒤집어쓰며 반짝이는 차들에게 부지런히 기름을 주었다. 그러다 몇 달 후 젊은이들도 기피한다던 극한직업. 철 고물  치우는 작업을 몇 년 동안 하셨다.


 “혜영아, 아빠 풍 왔다.”  

 나와 남편이 두 아이를 키우며 중국 연길로 이사 간 후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몹쓸 마비는 그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아빠의 신체를 정확히 이등분했다. 처음으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아빠의 바지를 조심스레 내려드렸다. 누가 들어올까 보다도 아빠가 스스로 더 작게 느끼시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프때에 바보가 돼서.” 

떨리는 아빠의 오른손 숟가락이 밥그릇 위로 간신히 올라가다 휙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면서 아빠가 하는 말이다. 풍 때문에 바보가 됐다고.


 중국 연길에는 노란 치마가 훌러덩 펼쳐진 수선화가 돋보이는 봄이 왔다. 받침 있는 단어도 제법 괜찮게 들릴 정도로 아빠는 눈에 띄게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쉼을 안겨드리고 싶어 아빠와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셨다. 중국에서 연길은 한국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족분들 또한 쉽게 만날 수 있어서 부모님께는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일본인 친구 코나미 가족이 산다.  코나미는 연길 국제 학교에서 초등 1학년 담임선생님이다. 그의 미국인 남편과 두 딸이 온다니 아침부터 분주하게 잡채와 불고기로 외국인 입맛에도 괜찮을 법한 한국 요리를 준비했다.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말이 식탁 위로 섞이며 더욱 맛있는 소리들로 넘쳐났다.  배부르고 나른해진 오후 창문으로 오렌지 물결이 스멀스멀 새어 들어온다. 여유를 즐기며 반박자 느리게 늘어져 가고 있을 무렵 아빠가 제자리 스텝도 없이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코나미한테.

  “극악무도한 일본 놈들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지.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힘이 없었을까? 힘만 없었나? 내께 지꺼고 니꺼도 지꺼고 우리께 어딨어?"

갑자기 느려졌던 템포가 거세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퍼컷을 날렸다. 

 “너네 할아버지도 죽을 고생 하고. 할머니도..”

힐끗 코나미를 쳐다보시다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일본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야, 당연히 좋은 사람들도 있지. 옛날 옛 쩍 얘기하는 거니까…” 나보고 통역하라고 허벅지를 툭툭 친다. 허벅지의 흔들림이 가슴까지 철렁거렸다. 내가 통역을 어떻게 했는지 다시 그때를 상기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냥 코나미랑 좋은 친구로 쭉 가고픈 바람뿐이었다.  

아빠의 경고 없는 공격에도 코나미는 침착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구며 어색함의 공기를 먼저 깨트렸다.

  “내가 일본인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이라 잠시 당황했다. 오히려 중간에서 내가 미안해졌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뭐가 미안해.”

내가 코나미의 등을 살살 쓸고 있는데 아빠가 코나미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하염없는 눈물에 콧물까지 꺽꺽 숨이 넘어갈 만큼 흐느끼는 아빠가 마치 갓난아기 같았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젊은 시인 윤동주를 동경하며 쓴 <이웃나라 말의 숲>의 광경을 보는 듯했다.


일본어가 예전에 내차 버렸던 이웃나라 말 
한글 
지우려 해도 결코 지워 없애지 못한 한글
용서하십시오 유루시테 쿠다사이
땀 뚝뚝 흘리며 이번에는 이쪽이 배울 차례이지요

이웃나라 말의 숲에는 결코 지울 수 없었던 한글만큼 시간이 남겨준 상처와 아픔 또한  고스란히 남아있다. 환영받지 못할 곳에서 용서를 들고 온 이와 숨가프게 보릿고개를 지나 희망 고개를 넘으려는 해방둥이도 있다. 저마다의 고개마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살아온 이야기들이 바스락 밟힌다. 


*이바라기 노리코 <이웃나라 말의 숲> [촌지],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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