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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Feb 05. 2022

교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2월 4일, 로자 파크스.

"같은 반에 있던 한 학생이 당신의 딸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앞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을 엄중하게 보고 인종 차별이 없도록 학교가 힘쓰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진심이 핸드폰 너머로 흘러 나왔다. 상황은 이랬다. 두 남자아이가 대화중에 큰 딸 이름을 언급했고 그 말을 들었던 딸의 친구가 담임 선생님한테 바로 전달했다. 담임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말했고 교장선생님은 즉시 우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남자아이의 부모가 학교에 불려 왔고 오후가 돼서 남자아이는 큰 딸한테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딸과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말이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곱슬 아프로 머리와 검은 피부는 한국에서, 몇 년 살았던 중국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머리가 떡졌다느니 죽을병에 걸렸냐느니 피부가 새까매서 우리 딸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며 혀를 차시는 할머니도 만났었다. 그럴 때면 "미용실가서 아프로 머리 할려면 아주 비싸요" 종종 딸의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설명하려 애썼다. 


오늘은 2월 4일, 로자가 태어난 날이다. 비범한 그녀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어떤 분이 셨을까? 문득 그녀의 어머니가 궁금했다. 흑인 교회와 학교가 불타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살해가 물 마시듯 빈번 했던 때에 로자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폭력적인 백인 무리들이 쳐들어 올 수 있으니 아버지는 매일같이 소총을 쥐고 문 앞에서 밤을 새웠다. 어머니는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잠옷이 아닌 일상 옷을 입히고 잠자리에 눕혔다. 혹시나 집을 서둘러 떠나야 하는 일을 대비해서 그랬다. 쥐 죽은 듯 숨을 죽이며 '오늘은 아이들이, 남편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섭게 엄습하는 두려움을 삼켜가며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했겠지. 어머니의 밤은 짙은 어둠만큼 깜깜하고 길었을 거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는 콩나물 시루 같은 몽고메리 시내버스를 탔다. 운전사가 백인 승객이 통로에 서 있는 걸 보고 앉아 있는 흑인한테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다. 흑인 승객 세명은 즉시 일어나 양보했지만 로자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녀는 체포당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마흔 두살.


그가 살아있다면 만나보고 싶은 그런 날이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거부하기까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묻고 싶은 밤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고독한 밤을 견뎌 주었고 그녀가 외로운 밤을 싸워 주었다. 그들의 눈물과 헌신으로 변화된 세상에서 나와 내 딸이 살고 있다. 앞으로도 더 바꿔질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이 희망을 놓치 않았기 때문이다. 옆방에서 큰 딸이 콧노래를 부른다. 문을 닫고 하루 종일 울어도 속상할 하루가 될 뻔했는데. 하루뿐인가. 평생 꿰매지 못할 상처를 못 본 척 안 본 척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 나음이 아닌 다름으로 세상을 바라 본 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무도 달라서,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아이에게 콧노래를 부르게 될 좋은 하루를 선사하게 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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