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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y 04. 2022

부엉이가 울었다

스코틀랜드 초등학교

파란 쓰레기통을 치우는 쓰레기차가 매주 수요일마다 온다. 이른 아침에 오는거라 화요일 저녁이면 미리 쓰레기통을 집 밖에다 두곤 한다. 고작 밤 7시가 되었지만 스코틀랜드의 겨울 밤하늘에는 벌써부터 까만하늘에 별들이 총총 떠 있다. 드럭드럭 쓰레기통을 끌고 집 밖으로 나가는데 옆집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늦은밤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쓰레기통을 파킹한 우리. 뭔지 어색하다는 걸 아저씨도 느꼈는지 나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밤 10시가 넘으면 부엉이가 아주 가까이에서 울어요."

부엉이라니. 그림책과 인터넷 검색창에서만 등장하던 부엉이가 운다니. 어색함도 잠시 부엉이집이 어디에 있는지. 이 주위에 부엉이가 많은지. 뭘 먹고 사는지를 물었고 아저씨는 막 동물원에 도착한 어린아이를 보는 듯 친절하게 아는 만큼 설명해 주었다. 철장 사이로 눈을 부릅뜬 동물원 부엉이가 아니라 근처 산책길에 살고 있는 이웃 부엉이라니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부엉이를 봐야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눈꺼풀이 마구 흘러 내렸다. 겨우겨우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가리킬쯤 창문을 조금 열고 조심조심 귀를 기울였다. 어떤 소리가 들릴 것 같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귀를 창문 쪽으로 바짝 기대었다. 그런데 가만있자. 내가 무슨 소리를 기대하고 있는 거지? 태어나서 부엉이 울음소리를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헛웃음이 나왔다. 


"학교 벨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저희 학교는 오늘부터 벨 대신 깃발을 흔들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였다. 황당했다. 내가 잘 못 읽었나 싶어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었다. 두 번 읽어도 어이가 없었다. 이곳 초등학교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을 무조건 밖으로 내 보낸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의 비가 아니고서는 무조건 나간다. 밖에서 온 맘과 힘을 다해 노는 아이들에게 벨 소리 없이 교실로 들어가게 한다니. 더군다나 깃발을 흔든다고? 건물 꼭대기라도 올라가겠다는 건가? 얼마나 흔들어야 하지? 정신없이 노는 아이들 뒤통수에다 제발 깃발 좀 쳐다 봐 주세요. 이렇게? 신데렐라가 생각난다. 밤12시가 되면 신데렐라는 초라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시계 없이 누군가가 저 위에서 보란듯이 깃발을 들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깃발을 보지 못한 신데렐라는 얼른 머리끈을 풀어 왕자의 눈을 가리고서 줄행랑을 치던지 생쥐의 도움을 얻어 무도회를 파투 놓았을지도 모른다. 깃발이라니.


그날, 혼자서 오만 생각을 하다가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후 저녁 밥상에서 불현듯 깃발이 생각나 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쉬는 시간이 끝날 때면 누가 깃발을 흔들어?"

"Mrs Hope, 쉬는 시간에 우리를 돌봐 주시는 선생님이 흔들어."

"근데.. 그게... 먹혀? 아니 아이들이 그 깃발을 보냐고?"

"어 당연히 보지. 아주 커! 6학년은 노란색 깃발이고 1학년은 빨간색 깃발이야"

"아니, 너는 보일 수 있어도 동생처럼 어린아이는 놀다가 못 보지 않겠어?"

"먼저 본 친구가 못 본 친구한테 전달해줘."

"아.... 그게 먹힌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딸을 보니 놀라웠다. 학교 벨이 울린다는 건 주변에 사는 이웃으로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여겼다. 학교한테 소음 신고를 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넘어 선 행동이 아닌가. 오히려 학교에서 신고한 분에게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라는 정중한 편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학교의 결정은 나의 좁아터진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때때로 밤 10시가 넘으면 집 밖을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부엉이가 그새 이사를 갔나? 듣겠다고 귀를 기울일수록 부엉이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찬 입김이 안개가 되어 흩어지던 밤,  부엉이가 울었다. 

'후 우우 후 우우 후 우우'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콱 막혔던 두 귀가 뻥하고 뚫리는 순간이었다. 하도 신기하고 절기해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부엉이가 보란 듯이 또 울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데도 마치 동화 속 한 페이지의 주인공처럼 부엉이와 함께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다. 어쩌면 부엉이가 그토록 울었지만 이제야 내 귀가 반응하는 거일 지도 모른다. 분명 낯설면서도 깊고 선명한 소리였다. 


틸리의 초등학교에서는 오늘도 가지각색의 깃발이 펄럭거린다. 벨 소음으로 고통받았던 어떤 분에게는 평안이 찾아왔으리라 믿는다. 귀를 기울이다 보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걸 부엉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깃발이 하늘 높이 춤을 출 때마다 아이들은 분명 기억할 것이다. 작은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배려하는 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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