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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Nov 18. 2021

모두가 꾸는 꿈은 다르니까

자랑스럽다에 밑줄 긋기

내가 받았던 상장은 개근상이 전부였다. 아니지. 초등학생 때 우수상도 한 번 받았던가. 개근상이나 우수상 말고도 상장의 종류가 더 있었겠지만 나는 받지 못했나 보다. 기억나는 상장이 없으니. 아파서 열이 펄펄 나도 늦어서 씩씩 거리면서도 내 몸무게 만한 무거운 가방을 메고서(거짓말 조금 보태서) 학교 가는 걸 빠지지 않았다. 성실하면 받을 수 있었던 개근상, 매년 똑같이 인쇄된 종이에 굵은 검은색 펜으로 적힌 내 이름이 어느 순간부턴 감동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 같은 애들이 수두룩 해서일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겁나게 밀어붙이는 엄마들이 있었으니 개근상은 처음부터 엄마가 받아야 될 상이 아니었을까? 반에서 우수상을 받는 아이들은 보통 두세 명이다, 우뚝 올라선 강단에 서서 상장을 받고 교장선생님과 마주 보며 악수를 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어김없이 은빛 가루가 나부꼈다.  


“엄마, 저 상장받았어요!”

아이를 기다리며 정문에 서 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과 6학년 아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상장을 흔들며 나비처럼 걸어왔다. 학교 마크와 그 옆으로 별 두 개가 그려져 있는 상장의 내용은 선생님의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루카스(1학년)- 항상 반에서 경청을 잘하고 친구들한테 친절합니다. 

자라(6학년)- 지속적으로 학교의 가치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자라가 어떤 가치를 보여줬다는 걸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Reaching이야.”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라는 다섯 손가락을 펴고 한 손가락씩 접어 가며 설명했다. 

R- Respect/ 존중

E- Empathy/ 공감

A- Ambition/ 꿈

C- Care/ 돌봄

H- Honesty/ 정직

이런 다섯 가지 가치에 목표를 두고 Reaching(도달)하는 거야”


"개성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를 강조하셨던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100세, 김형석 작가님의 글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100명 학생에게 한 가지 운동 경기만 연습시킨 뒤, 기한이 차면 경기를 시키는 식이다. 100명 중 1등을 한 애는 보람과 희망을 갖는다. 또 2, 3등까지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나머지 97명은 똑같은 고생과 수고를 하고도 소외당하고 버림받는다. 100명이 100가지 운동을 선택한다면, 1등을 하는 학생이 100명 나올 수 있다. 모두가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첫째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학기말 시상식이 있어 참석했다. 상장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에 첫 번째로 놀랐고  상장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두 번째로 놀랐다. 상장마다 스토리가 있었다. 

<The Sarah Murray Merorial Award for Senior Dance> 고학년 댄스 부문 새라 머레이상. 

댄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고등학생 아이, 이름은 새라. 새라는 학교 생활도 성실했으며 주변 학생들에게 춤추기를 격려하고 응원했단다. 안타깝게도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병과 싸우다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새라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은 학교는 새라를 기념하기로 했다. 

새라 상장을 받으러 검은색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학생들이 강단 위에 올라섰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학생도 수줍게 두 손을 허리 뒤로 모았다 폈다를 반복하는 학생도 상장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예이이" 소리치는 학생도 하나같이 환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방긋 웃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새라가 겹쳐 떠올랐다. 딸 같은 아이. 머리를 흩날리며 춤을 췄을 아이. 아이들을 통해 새라의 꿈이 살아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댄스 말고도 말 타기, 노래, 악기(플루트, 바이올린, 피아노 등 구체적으로), 복싱, 달리기, 창작 글쓰기, 시, 자원봉사 활동, 단체 모금 활동, 과목별 선생님이 뽑은 상, 교장선생님이 뽑은 상 등.. 우리 첫째 딸뿐 아니라 학생 모두가 적어도 두세 개의 상장 정도는 손에 쥐고 있었다. 김형석 작가님이 말하는 교육이 이런 거였을까. 

모두가 꾸는 꿈은 다르니까.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며 수고한 아이들에게 "잘했어" "훌륭했어" "너는 최고였어"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거. 그럴 때 은빛 가루가 휘날린다. 이제 보니 은빛 가루를 휘날리는 건 선생님과 학부모의 몫이었다.

공부를 특별하게 잘해서 주는 우수상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에 가치를 두고 높이 평가되는 상. 이런 상을 받은 아이들이 눈물 나게 멋있어서 있는 힘껏 꼭 안아주었다. We are so PROUD of you. / 우리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자랑스럽다’에 밑줄을 그을 만큼 힘을 주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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