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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Feb 22. 2022

하나, 둘, 싯, 닛, 다싯, 태권!

시에나의 주먹 쥔 오른손이 바람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갔다. 왼손과 바뀔 때마다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 둘 싯 닛 다싯, 태권!"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는 원 투가 아닌 한국말이었다. 시에나는 6살 우리 막내 태권도 선생님이다. 어느 날 학교 알람에서 태권도 수업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얼른 예약을 했다. 이 시골 마을에 태권도라니. '설마'했는데 '엄마야'가 됐다.

 

태권도라는 한글이 또렷하게 적힌 흰색 도복에 검은색 띠를 허리에 둘러싼 그는 자기를 시에나라고 소개했다. 작은 체구에 쉿 쉿 바람 소리를 내면서 날렵하게 지르기와 발차기를 한다. 바람을 볼 수 만 있더라면 깔끔하게 대여섯 동강은 났을 거다. 보는 부모들의 숨조차 조각난 듯 조용해졌다. 


"Attention이 한국말로 뭘까?" 시에나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차리트"라고 말했다. 

"그럼 Bow는?"

하얀색 태권도 도복을 입은 한 명의 아이가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켱레이라고 하지." 

웃음 띈 얼굴로 시에나가 다시 물었다. 

"태권도는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을까?"

"스코틀랜드"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 질렀다. 

앉아 있는 아들의 등을 향해 '대답하라'는 무언의 레이저를 마구마구 쏘아댔다. 역시나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들이 큰소리로 소리쳤다.

"틸리쿠트리"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웃음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틸라쿠트리는 우리 마을 이름이다.

"태권도는 KOREA에서 시작됐어요."

시에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태권도의 창시자는 최홍희이며 1955년에 정식으로 태권도라는 이름을 불렀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영국 사람을 통해 처음으로 접해보는 태권도의 역사라니. 일어나서 열렬하게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영국친구 시에나를 사로잡았던 태권도. 한국인인 내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부끄러운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태권도를 검색해봤다. 설렘으로 찾기 시작한 태권도의 역사, 놀랍게도 그 찬란함 뒤로 가려졌던 분단의 아픔, 또한 피할 수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는 ITF(국제 태권도연맹)를 세웠고 태권도를 세계에 알리는데 힘썼다. 시에나가 소속되어있는 단체 또한 ITF다. 최홍희와 박정희가 틀어지면서 최홍희는 북한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자리 잡게 되었고 ITF의 활동은 점점 북한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최홍희는 끝내 평양에서 생을 마감한다. 시에나가 했던 말이 도돌이표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태권도는 KOREA에서 시작됐어요."


외국에서 살면서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다음 질문이 있다.

"너는 북에서 왔어? 아니면 남에서 왔어?"

그럴 때면 평생 불려 왔던 '우리나라'가 두 조각이 난 나라였음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ITF와 WTF의 분단처럼 말이다. 뿌리는 하나건만 진짜니 가짜니 어느 게 더 우월하니 못하니. 티격태격 중이다.


아이들이 발끝에 힘을 주어 앞차기를 한다. "태권" 나무판자가 둘로 갈라졌다. 

북한 땅에서 울려 퍼지는 '태권'을 상상해본다. 사나운 바람도 쪼개질게 무서워 도망가겠지. 540도 뒤 후려차기 한 방에 거대한 나무도 뿌리 뽑히겠지. 태권도를 며칠 다녔다고 아들이 제법 '태권'이라고 잘도 소리친다. 두 주먹도 불끈 쥐며 헷갈리지 않게 오른손 다음에 왼손을 앞으로 내민다. '태권' 소리와 함께 날렵하게 뛰어오를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는 태권도가 하나 되는 그날을 꿈꿔본다. 


 

태권도 수업을 받은 첫날, 참여한 모든 아이들에게 잘했다고 주어진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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