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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r 01. 2022

"LEST WE FORGET"

우크라이나에 자유와 평화가 있기를 기도하며...

스코틀랜드라는 나라에 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꼬부랑 꼬부랑 몇 번의 고개를 넘고 나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푯말 하나가 보였다. 

'Korean Memorial War'<한국 전쟁 기념관>

무성하게 둘러싼 푸른 나무들 사이로 흙을 구워 만든 한국의 전통 기와지붕 하나가 고요하고 무게 있게 서 있다. 양팔을 벌리면 그만일 조그만 지붕 아래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바쳤던 영국 군인 1089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나라, 코리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미지의 땅.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낯선 땅에서 젊은이들은 총을 겨누고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이 황폐한 땅에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무고한 피를 흘려야 하는가 수백 번 수천 번 고민했겠지. 부정확했던 낡은 지도 한 장 들고 익숙지도 않은 지역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발 한발 무겁게 전진했을 테지. 잠시 흘렀던 눈물조차 날카로운 얼음으로 얼어버렸을 영하 20-30도의 혹독한 겨울, 꼬깃꼬깃 접어둔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에 매일 같이 뽀뽀를 하며 살아갈 소망을 기원했을 테다. 


이곳 한국 전쟁 기념관에는 110개의 한국산 전나무가 심겨 있다. 전사한 영국 군인 10명당 1그루를 상징하기 위함이란다. 전사한 군인을 대표하는 약 1100개의 스코틀랜드 수목도 전나무와 함께 숲을 어우르고 있다. 1950년 한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을 건너기 위해 임시로 만든 다리 위를 행렬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던 전우가 적의 포탄을 맞고 다리에서 떨어졌고 저는 즉시 두 가지 옵션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뒤의 전우에게 무기를 넘겨주고 그를 강에서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그를 강으로 밀어서 모든 전우가 그 강을 무사히 건너게 할 것인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 중 90살을 훌쩍 넘기신 아담 맥켄지 할아버지의 인터뷰 중. (By 리멤버 727 Korea)

하루에도 수십 번 생과사를 오가는 결정들을 해야만 했을 거다.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결정들 말이다. 다리로 떨어졌던 그 전우의 칠순잔치에서 그는 맥켄지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나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쓰라릴 만큼의 외로움도 죽을 만큼의 두려움도 서로가 있어서 이길 수 있었을 테다.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자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서 이 전쟁 기념관을 설립했다. 기억에서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을 만큼 지옥 같은 과거와 슬픔이 이곳에 있다. 고통스런 과거를 되살릴 만큼 이 기념관을 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 세대에라도 알리 고픈 절절한 그들만의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들어오는 입구에 적힌 글자가 분명하고 선명하게 내 가슴 위로 망치질하고 있다. 

"LEST WE FORGET" (옛날 영어식이라 지금은 "LET US NOT FORGET" 이렇게 표현하는게 맞다.) 


최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요 보좌관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수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았다. 18-60세의 남성들도 너도나도 펜과 자판과 커피 대신 총을 들었다. 더 이상 전쟁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 자유와 평화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바스게이트(Bathgate) 언덕에 있는 한국 전쟁 기념관


들어가는 철문에 적혀 있는 "LEST WE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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