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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Jan 19. 2022

고향에 다녀왔다.

떡볶이가 데려다준 고향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보내준 멸치도 있고 큰 마트에서 산 고추장도 있고 심지어 지난번 바다에서 직접 따와 말린 다시마도 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데 떡이 없다. 화려한 조명이 켜졌고 푸른 잔디가 넓게 깔린 운동장과 축구경기를 보러 멀리서 오신 팬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다. 땀 흘리며 이 날을 위해 수고한 축구선수도 있는데 공이 없다니. 어디 가서 아무개 떡이라도 잡아 오고 싶었다. 


마침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큰 도시 글래스고를 찾았다. 오래된 박물관도 보고 무엇보다도 방앗간을 지나칠 순 없었다. 아시안 마트 두 곳이 있다길래 눈에 불을 켜며 찾았다. 거리는 휑한데 이 좁은 공간에 모인 참새떼들이 이리도 많다니. 외지에서 그들도 고향 냄새를 맡으러 날아왔나 보다. 허나 내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떡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에 푹 젖어 집까지 못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리가 부르르 떨린다. 이때 내 눈에 확 꽂히는 게 하나 있었다. 중국산 찹쌀가루.

'그래 그까짓 거 만들어 보지 뭐.'

난생처음 유튜브를 보며 찹쌀가루를 반죽했다. 생각 외로 물렁이지 않고 손에 들러붙지도 않아 깔끔하게 축구공 만한 원을 만들었다. 그걸 문질러서 오이로 만들었다가 계속 비비고 비벼 기다란 뱀처럼 늘어졌다. 적당하다 싶은 길이에서 싹둑 잘랐는데 제법 그럴싸한 떡 모양이 나왔다. 빠질 수 없는 멸치와 다시마로 얼큰한 육수를 만들고 고추장과 다른 재료도 퐁당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100% 핸드 메이드 떡볶이 떡을 눈부시고 화려하게 골인 하는 순간, 열렬한 박수와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문학을 읽으며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정혜윤 피디의 글이 떠오른다.

돈키호테를 읽고 스페인으로 갔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고 런던으로 갔고 그리스 로마 신화와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읽고 그리스로 갔다. 
책과 생각 [책으로 떠나는 여행] 정혜윤 피디


매콤 달콤한 소스를 둘둘 말은 찰떡이 입에 달라붙을 때마다 그리웠던 고향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 방과 후면 친구와 주머니를 탈탈 털어 골목 분식점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커다란 프라이팬 위로 바짝 말라있던 떡볶이에 불을 붙이면 잠시 쓰러져 있던 떡볶이에 윤기가 좔좔 흘렀다. 1인분 만큼 접시에 담겨 나온 떡볶이를 먹으며 깔깔깔 배꼽을 잡고서 한참을 웃었던 우리. 어른이 되고 보니 둘이서 1인분 달랑시켜 놓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앉아 있어도 빨리 가라는 눈치 없이 다음에 또 오라며 반겨주셨던 아주머니가 무척이나 고맙다.


노랑, 빨강 가지각색의 포장으로 고이 담겨 있던 찰떡 선물을 질리게 받았던 건 고3.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구멍가게로 조르르 달려가 찰떡 아이스크림을 샀다. 용기 안에 들어 있던 포크로 찰떡 아이스크림을 찍어서 하나는 입에 쑤셔 넣고 하나는 눈덩이처럼 친구들 머리 위로 던졌다. 흰색 눈덩이는 머리에 달라붙었다가 눈도장을 찍고 쭈르르 미끄러졌다. 찰떡은 원래 미끄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거일 지도 모르겠다. 시험이 끝났다. 세상을 이긴 것 마냥 기뻤다.   


외지에 살다 가끔씩 한국에 들어갈 때면 엄마는 냉동고에 꽁꽁 감춰 놨던 각가지 떡들을 데워 주셨다. 특히나 굵은 가래떡을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꿀에 발라 먹을 때면 행복이 고생했다고 두 팔 벌려 안겨왔다. 

"너의 외할머니도 떡을 좋아했었지."

 그동안 묵혔던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가래떡만으로도 배가 불러서 저녁이 따로 필요 없었다.  


나를 닮아서 우리 두 딸도 떡이란 떡을 다 좋아한다. 벌써 두 그릇째다. 맵다고 헉헉 거리면서도 계속 젓가락질을 한다. 아이들과 같이 먹는 이 시간이 언젠가 아이들의 미래에 다시 찾고 싶은 잠시 머물고 싶은 고향이었으면 좋겠다. 달그락달그락 큰 딸이 설거지를 한다. 잠시나마 들렀던 고향이 따뜻해서 조금 더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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