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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Jun 16. 2022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그의 장례식장에서

<만약 내가> 에밀리 디킨슨

오열을 하며 흐느끼던 엄마가 땅에 주저앉았다. 

"딸아 딸아, 내 사랑하는 딸아."

35살 차가운 주검이 되어버린 딸의 관을 붙잡으면서 하는 말이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차로 바래다주면서 함께 동반했던 장례식장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엄마는 딸이 죽었을 때 옆에 같이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딸이 일어나지 않자 딸을 안고 마구 흔들었단다. 평소처럼 같이 했던 마약이었는데 엄마는 여느 때처럼 일어났고 딸은 깨어나지 못했다. 금쪽같은 세 살과 다섯 살의 어린 딸을 남겨두고 그는 떠났다. 


스코틀랜드로 이사 온 지도 1년 하고 반이 지난 지금, 마약 과용 때문에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주변의 이야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이웃 할머니의 딸도 마약 중독자다. 지금은 딸과 같이 살고 있진 않지만 할머니가 다섯 살짜리 손녀를 보살펴 주고 있다. 사회 복지사는 할머니의 딸이 손녀를 돌볼 수 없으니 가족 중에서 이 아이를 돌보거나 입양을 결정하라고 했다.  

며칠 전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정말 어느 날, 딸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할머니는 전화기에 모르는 번호가 뜰 때마다 가슴이 미치도록 두근거린다고 했다.


제로 미세먼지에다 수도꼭지의 물을 바로 마셔도 문제없는 청정의 땅. 국민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본다는 대표적인 복지국가.  대학 비와 의료비가 무료인 이 착한 나라에서. 오늘도 하루에 3.7명의 사람들이 마약 과용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약물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 사는 한 엄마가 피난 중에 큰딸과 남편을 잃은 이야기를 기사에서 접했다. 엄마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은 딸아이의 머리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딸과의 마지막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엄마는 작은 딸을 끌어안고 재빨리 몸을 숨겨야만 했다. 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하루를 가슴 조아리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나 학교의 잘못된 교육을 탓하거나 못된 주변의 친구를 탓하거나 정부나 정책을 탓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틸리 마을. 스코틀랜드. 하늘 천국과 가까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곳도 완벽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걸. 아마 완벽한 세상은 이 지구에서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적시하게 된다.  '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어떤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인 걸까?' 각자 자기만의 착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도망가고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지키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 세상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그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묻고 또 물어본다. 


<만약 내가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마중 나온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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