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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Mar 22. 2022

나와 내 딸도 눈부시게 이쁠 겁니다.

<Primark 옷 가게에서>

"자기는 눈이 작아서 못 쓰겠어. 조금만 찢으면 완벽할 텐데.."

흰색 모자를 꾹 눌러쓴 한 아주머니가 내 오른팔을 잡아당기며 OO성형병원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대 놓고 수술을 하라니. 난생처음 듣는 소리라 당황했지만 오히려 눈을 더 크게 떴다. 따가워서 눈물이 찔금거릴 만큼. 

"제 눈은 이미 완벽한걸요." 

뱉어 놓고 보니 괜찮은 대답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주머니의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얼마큼 찢어놔야 쳐다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완벽한 눈이 되는 걸까?' 

'도대체 완벽한 눈이라는 게 있을까?' 

노란색 전단지 위로 서로가 완벽하다고 부릅뜬 눈들이 나를 벌처럼 쏘아 드는 거 같아 전단지를 쓰레기통에다 쑤셔 넣었다. 십 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프라이마크(PRIMARK)이라는 옷가게에 들어갔을 때였다. 내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았던 한 여인, 그녀는 곱게 접어둔 옷 위로 사뿐히 걸려 있었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반듯하게 모아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잠깐, 내가 들어온 곳이 옷가게가 아니었던가?' 

이 옷을 상품화시키려면 날씬하고 완벽한 쌍꺼풀을 가진 여인이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불어오는 바람에 한번쯤은 휘휘 날려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병원의 전단지를 받았을 때 나는 중국 연길이라는 곳에 살았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머리 구석 어딘가에 저장되었던 광고 사진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연길 시내 한 복판으로 기억한다. 백화점 꼭대기와 파란 하늘 사이에 네모나게 달려 있던 대형 사진. 푸른 초장의 배경이었고 한 백인 엄마가 아시안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유명한 OO회사의 분유 광고였다. 순간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회사는 왜 중국인 엄마를 모델로 쓰지 않았을까?'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쉽게 등장하는 백인 모델 광고가 익숙 한지라 답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당시 캐러멜색 피부를 가진 어린 딸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는 한 여자이자 엄마로 썩 내키는 광고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잠시 영국으로 들어갔을 때, 기저귀를 사러 한 마트를 들렀었던 기억도 난다. 바삐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던 사진. 기저귀 포장지 앞 뒤로 공을 차고 있는 흑인 아이 모습이었다. 얼굴만큼이나 빼어난 아프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 아이의 웃음소리가 깔깔깔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울까? 아이의 웃음은 자연스레 나에게 전염되었다. 일주일 후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마흔 개나 들어있던 기저귀 세트 두 개를 카트에 실었다. 뾰족했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다.  


성형수술을 하라고 전단지를 건네준 아주머니와 분유광고에 등장한 백인 엄마가 잘못되었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도 땀 흘려가며 값진 노동으로 일을 했을 뿐이다. 다만 '아름답다'라는 기준이 어디서 온 걸까? 이런 기억들이 불러 나올 때마다 되묻게 되는 질문임은 틀림없다.


프라이마크(PRIMARK)에서 본 그녀의 자연스러운 포즈는 두드러지다 못해 수이했다. 그녀는 이 옷을 사야 하는 이유를 다르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당신이 이 옷을 입는다면 (나처럼) 이뻐질 수 있답니다'가 아니라 '아름다운 당신이 이 옷을 입는다면 저는 무척이나 행복할 겁니다.'라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PRIMARK' 옷 가게에 이메일을 썼다. 

Dear PRIMARK

오늘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모델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포즈가 두드러지게 예뻤고요. 

그 옷을 입을 나와 내 딸도 눈부시게 이쁠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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