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할아버지
올해 초 우리 가족은 스코틀랜드 작은 마을로 이사 왔다. 낯선 외국 땅에서 경기 이천에 사셨던 외할머니 집 동네와 공통분모를 찾는다는 게 생각만으로도 재밌었다. 그때도 구멍가게가 그 마을에 딱 하나 있었다. 여기도 우체국을 겸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두명만 가게에 들어갈 수 있고 문 밖으로 2m 간격을 두고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러면서 나는 데이비드 할아버지를 만났다.
“들어와 어서 들어와!”
할아버지는 나에게 할머니를 소개해 주고 싶다며 할아버지 집으로 나와 남편을 안내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나를 꼭 아시는 것 마냥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우리 마을로 이사 온 걸 환영한다는 말에 힘을 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날짜가 꼼꼼하게 적혀있는 계란 여섯 개를 건네주셨다. 갈색 깃털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따뜻한 계란이었다. 친절한 이웃이 살고 있는 것도 외할머니네 시골이랑 어쩜 똑 닮았다.
나는 할머니를 다시 보기 위해 꽃을 샀다. 계란 노른자가 어쩜 그렇게 선명하고 탱글탱글하던지 너무 신선했다는 말도 힘주어 말할 것이다.
“자넷이 어제 급하게 병원에 갔어.”
자넷 할머니는 집에 없었다. 데이비드 할아버지의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꼈고 그렇게 할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헤이여”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 거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데이비드 할아버지다.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
“전 5에요.”
“내 아내 사이즈랑 같아. 안 그래도 아내 물건 정리하면서 이쁜 신발들을 버릴 수가 없겠더라고. 헤이여가 필요하다면 신어주면 좋겠어.”
“저야 고맙죠. 신으면서 걸으면서 할머니 생각도 하고요.”
할아버지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 오늘 저녁은 뭐 드셔요?”
“아내가 만든 라자냐 먹으려고. 냉동실에 두 개 남았거든. 오늘 하나 데워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냉동실에 그냥 남겨 두려고… 그건 못 먹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말 끝을 흐렸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나와 남편이 IF를 두고 의견이 갈라졌다.
남편은 라자냐가 냉동실에서 썩혀지다 쓰레기통에 버리느니 차라리 다 먹겠단다. 나는 할아버지처럼 하나만 먹고 하나는 냉동실에 그냥 두고 싶다고 했다.
오늘 우리 집 저녁 메뉴는 피자다. 아이들은 아빠 피자를 아주 좋아한다. 직접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밀대로 동그랗게 밀고 아몬드 가루를 피자 베이스 밑으로 뿌린다. 나를 위해 고추장과 토마토소스를 살짝 섞은 베이스에 빨간 고추도 송송 올려진 피자. 아이들을 위해 양파와 버섯을 먼저 볶아 다른 야채와 함께 올린 피자도 있다. 어느 마트에서나 구입할 수 없는 오리지널 내 남편표 피자. 오늘따라 한입 한입 음미하며 되새김질했다.
Thank You를 연발하면서..
데이비드 할아버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