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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뽀리 Jul 11. 2024

정신과 첫 방문기

살고 싶어서 왔어요.

약을 먹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의 주된 병은 양극성장애였고

신경안정제를 비롯해서 5~6가지의 알약을 먹기 시작했다.

낮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나를 배려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녁에 약을 몰아서 처방해 주셨다.


다만 근무 중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과호흡, 극심한 불안 등을 느낄 때 긴급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필요시 약도 함께 주셨다.


내가 처음 기대했던 약의 효과는, 

약기운이 몸에 퍼지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도 없어지면서 잠도 잘 자는 이전의 내 생활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차분해지기보다는 살짝 쳐진다고 할까? 여전히 무기력했고 잠들기는 어려웠다.

상태와 정도에 맞게 약을 나에게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점점 불규칙하게 쿵쾅거리던 심장소리가 평소보다 덜해지고,

사무실에서 눈물이 나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약을 먹으니까 괜찮아질 거라 자위하며 계속해서 업무를 해나갔다.


이런 나의 상태를 팀원들은 몰랐다. 알리고 싶지 않았고, 몰랐으면 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실제로도 점점 괜찮아지는 듯하는 느낌을 받으며) 열심히 출근했다.

여전히 군말 없이 시키는 일을 다 하는 착한 직원이었고, 그런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연말을 겪은 후 갑작스럽게 또 다시 전보를 하게 되었다.


총무과였다.


인수인계를 받던 중 전임자는 나에게 도망갈 수 있으면 도망가라고 했다.

이 자리는 최악이라고,

충고랍시고 좋지 않은 말들만 해주었다.


정말 왜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밤낮,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긴장해야 하는 자리였다.


내 상태는 이전 부서에 있을 때보다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즐거운 금요일 퇴근 전부터 다음 주 월요일 출근 걱정뿐이었고,

업무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도 사무실에 들어가면 눈물만 흘렀다.


그래서 인사담당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사실 내가 왜 갑자기 전보를 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동안 나는 시키는 거, 하라는 거 다 하는 직원이었는데,

기껏 계약팀에서 고생하고 왔더니 또 뼈를 갈고 일해야 하는 자리냐,

일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은 계속 일을 안 하는데 너무 불공평하다.


울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나를 더 허무하게 만들었다.


'결국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거 너도 알지 않느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반응


전보제한도 본인들이 필요할 때만 원칙이라며 내세웠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대우 따윈 없는 이곳에서 

점점 공무원 조직에 대한 반발심, 실망감, 배신감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아, 내가 충성을 바쳐서 일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그동안 나름의 자부심으로 일을 해왔는데 더 이상 출근이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집보다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원들과 함께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더 회사에 나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냥 출근길에 교통사고나 났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퇴근을 하면 매일 술을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방 문을 나서는 게 무서워 울면서 팀장님께 전화하기도 했었다.

(당시의 팀장님께서는 내 상황을 아시고 굉장히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폐쇄병동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우울척도와 자살의 위험성이 너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밤들의 연속이었다.


당시에 나는 본가에서 독립해 혼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새벽 3시를 넘어갈 때쯤

문득, 혼자 있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무서운 감정에 휩싸였다. 


바로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주무시고 계시던 엄마를 깨워 나 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렸다.


'엄마, 나 정말 숨을 못 쉬겠어. 제발 나 좀 살려줘.'


그렇게 밤새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었고,

엄마는 술 마신 딸 속이라도 아플까봐 끓인 북엇국을 내어주시며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솔직히 놀랐다.

내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엄마였는데,

그런 엄마 입에서 공무원을 그만두라는 말이 나오다니.


엄마는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냐며 계속해서 그만두라고 하셨다.


하지만 미련한 나는 그만 두지를 못했다.

나에게는 공무원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직서 대신 휴직을 선택했다.


공무원이 질병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진단서에 명확한 사유와 기간이 명시되어야 한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휴직을 권유하셨기 때문에 진단서는 바로 발급이 됐다.


진단서에 적힌 나의 병명은 다음과 같았다.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상세불명의 신체형 장애

알코올 의존증후군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상세불명의 반응

적응장애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휴직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모든 것은 내가 총무과로 발령받은 2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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