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도전기
생각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잠을 자야만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어두웠던 창밖이 밝아져 오는 걸 느낄 때쯤
나의 모든 것-기분, 감정, 체력, 기력, 등은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휴직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도 줄었고, 외출도 줄었다.
새로운 경험이나 시도는 하지 않은 채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결국 나를 죽이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괜한 피해의식에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게 문득 아깝기도 하고,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돌볼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공허한 눈빛으로 인터넷을 뒤지던 중 나의 관심을 끌게 만드는 단어가 하나 보였다.
템플스테이
집에서 차로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산청의 대원사로 무작적 떠났다.
초행길, 초보운전인 나 혼자라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설렘도 느껴졌다.
우선 날씨가 너무 좋았다.
파아란 하늘과 지리산 풍경, 고즈넉한 사찰까지 3박자가 잘 어우러져서 너무 아름다웠다.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절이었고, 숙소는 운이 좋게도 1인실을 배정받았다.
나눠주신 개량한복을 받아들고 숙소로 들어가니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통유리창 너머로 꽃과 나무들이 있었고,
창을 살짝 열어놓으면 살랑살랑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기 딱이었다.
절이라는 장소가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좋았다.
빡빡한 일정이 아니라 정해진 체험시간 외에는 혼자서 산책도 하고 방에서 그냥 책을 읽기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방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었다.
공양시간은 목탁소리로 알려주신다.
공양..
맛있다는 후기를 보고 살짝 기대를 하면서 갔는데 나한테는 조금 어려웠다.
향이 강한 나물들.. 당귀라든지..
같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하신 가족단위의 팀이 있었는데 그 팀 어머님께서 과자를 나눠주셨다.
한줄기 빛이였다.
그리고 의외로 나처럼 혼자 오신 여자분들이 많았다.
다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가지고 온 듯 했다.
대원사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 중 나는 체험형을 선택했고,
절에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들이 있었다.
광목천에 구절초도 그려보고, 염주 만들기도 했다.
절 하는 법도 배웠고 아기 멧돼지도 보았다.
보살님 말씀으로는,
종종 산에서 멧돼지 가족들이 내려오는데 너무 겁먹지 않고 무심히 보면 알아서 지나간다고 하셨다.
해가 지고 9시면 모든 불이 꺼졌다.
산속에 불 하나 없으니 정말 깜깜했다.
깜깜하고 고요했다.
바로 잠들지 못하고 생각이 많았지만 그 시간이 싫지가 않았다.
겁 많고 의욕없이 지내다가 왕복 6시간 거리를 혼자 왔다는 게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1박2일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내가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너무 불안에 휩싸여있다는 인지도 조금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템플스테이였는데 만족스러웠고 오랜만에 마음도 편안했다.
휴대폰이나 TV, SNS와 잠시 멀어져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