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포기할 수 없어서 회사를 포기합니다.
1년 동안 휴직을 하면서 마음이 튼튼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도 햇빛 쬐며 산책을 하기
∨ 책 읽기
∨ 운동하기
∨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한 활동들-미술학원 다니기, 꽃꽂이 배우기
∨ 약 꼬박꼬박 챙겨 먹기
∨ 밥 규칙적으로 건강히 챙겨 먹기
∨ 잠 못 잤다고 자책하지 않기
∨ 반신욕 하기
이 외에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사소하지만 내겐 결심이 필요한 목표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일상생활이 회복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고, 오히려 밝은 사람인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그렇게 복직이 3개월 정도 남을 시점이었다.
유난히 공무원들이 고된 업무로 스스로 목숨을 잃는 소식이 많이 들렸다.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의 힘든 마음이 너무 공감되고 또 슬펐다.
나는 복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복직하긴 이르니 원한다면 진단서를 써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언제까지 무섭다고 피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당시에 일주일에 3번 병원을 다녔는데,
한 번은 처방약을 위한 진료, 두 번은 정신분석심리상담을 위한 진료였다.
일반적인 공무원의 신분으로는 주 3회, 조퇴나 외출을 쓰며 병원을 다니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 공백을 대신할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복직하기로 결심하고 인사팀을 찾아갔다.
인사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
시간선택제는 부서에서 반기지도 않을뿐더러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안 좋냐.
고 물었다.
진단서를 봤지만 우울증이랑 뭐 별거 없던데. 라며 의문을 가졌다.
심장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 병에 대해 한없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사실 내가 이렇게나 힘들다며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고 말한다고 한들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래도 인사담당자인데 직원을 대하는 태도와 말하는 표현방식이 너무 아쉬웠다.
결국 고민 끝에 면직을 결심했을 때,
나는 그 인사담당자로부터
‘네가 어디 가서 이렇게 3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 외에도 남자친구가 돈이 많냐, 결혼해서 전업하면 되겠네. 등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나는 내 목숨을 포기할 수 없어서 직업을 포기하려는 건데, 왜 남에게 그러한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일을 그만두고, 정신적으로도 회복하고 나면 하루하루 치이는 삶이 아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약 10년 동안 몸담았던 공직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남들이 안정적인 생활이라며 부러워하던 그 ‘철밥통‘을 내려두고 제2의 인생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