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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뽀리 Aug 01. 2024

면직 그 후 - 33년 인생, 백수는 처음입니다만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지금.

제목 그대로.


면직원을 제출하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치열하게 살았나 싶다.

백수가 처음이라니.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취준생'이란 타이틀도 사치스러운 나였는데, 

한창 열심히 일할 나이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당장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오롯이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나의 의원면직 공문이 뜨면서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한동안 전화가 많이 왔다.


그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복직을 해보려고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그중에는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구나.. 라며 안타까워하는 동료들과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가서 제발 성공해 좋은 소식 들려달라며 나에게서 희망을 보려는 사람들,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복직을 안 하고 그만두는 거라는 여전히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반응들이 있었다.


(후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사실 조금 우스웠지만 사실과는 상관없이 딱히 정정하지는 않았다.)


처음 한 달~두 달 동안은 내가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힘들었다.

실감도 나지 않았다.


여전히 출근하는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했다.


계획했던 일들을 하지 못했던 하루.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TV만 보며 보냈던 하루.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던 하루.


이런 하루하루들이 모이는데도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함을 느꼈다.


예전의 나였으면 미치도록 견디기 힘든 시간 들이었을 텐데


아.. 이런 평정심이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일까?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바로 이런 걸까?


싶은 순간들이 문득문득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제활동을 하고, 밥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10년 동안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받게 된 돈은 상당히 초라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공무원도 했던 사람인데 뭔들 못하겠냐고, 

대단히 똑똑하고 잘난 사람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1줄이 없었다.


다들 열심히 취업준비하며 쌓아온 그 스펙이, 

그 흔한 자격증이 나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왔다고 하면, 

그 좋은 직장을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며 이상한 사람처럼 보기도 했다.


하루는 구직사이트를 둘러보았다.

학력과 자격증, 경력을 쓰는 칸에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아, 이게 냉정한 현실이란 벽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는 공무원을 그만둔 순간,

앞으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또 다시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일을 하게 되면 결국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것을 내 직업으로 삼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일.

남탓하지 않고 스스로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


여전히 그런 일들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천, 수만 가지의 직업 중의 하나를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있다.


나는 앞으로의 내가 기대된다.


과거 10년 동안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감정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공무원을 하면서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기회조차 없었으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공무원이라는 삶을 살았을 때보다 부담이 크고 위험하고, 힘들 수도 있지만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보람을 느끼며 공직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은 것을 안다.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공무원이든, 아니든 

나는 '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공무원이 아닌 나의 삶, 

이왕이면 누군가에게 들려주었을 때 기분 좋고 희망찬 내용으로 가득한,

그런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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