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사실 거의 그 사람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같이 있는데도 마음은 화난 채로 등을 돌리고 있는 거였다. 물리적으로는 한 공간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단절된 채로.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듯, 그 사람이 거기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여기면서.
그런데 그 말이 뭐냐면, 이미 내가 기대를 했다는 뜻이었다. 기대했으니까 실망했고, 실망했으니까 화가 난 거였다.
리얼러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기대는 실망과 화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기대하지 말라니, 그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건가? 그냥 체념하고 살라는 건가?
하지만 점점 알게 됐다. 기대라는 건 결국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씌우는 일이라는 걸. 내 안의 이상향을 그 사람에게 투영하고, 그 사람이 그 모습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실망하는 것.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환상을 사랑하는 거였다.
이번에 남편이 5주 동안 출장을 가게 됐다. 그 전에도 이 주간 해외에 나가 있다가, 5일을 집에서 머물고 다시 삼 주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길고 긴 분리의 2주가 지나고 중간에, 딱 5일 집에 머무는 날이 왔다. 5일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그 5일이... 그냥 너무 감사한 거였다.
'기대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진짜 기대가 없었던 상태였다.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니까.
침대에 같이 누워 있는 것, 시차 적응 때문에 멍하게 누워 있는 것조차 그냥 고맙고, 따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같이 마시는 것,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것, 딸아이 사생대회에 돗자리를 펴고 그림을 그리는 걸 지켜보는 동안 남편은 돗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그것조차 감사했다. 남편이 있다는게.
그래서 그 짧은 5일이 마법 같은 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기대가 없을 때, 있는 그대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구나. 그걸 이번에 몸으로 배웠다.
기대가 있을 때는 항상 뭔가 부족했다. '이것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저것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만족스러운 순간에도 '더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자주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이 따라왔다.
하지만 기대가 없었던 그 5일은 달랐다. 모든 순간이 보너스였다. 그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감사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순수하게 사랑하는 일이었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대신, 그 사람이 그냥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
일상으로 돌아온 마법
5일은 금세 지나갔다. 다시 공항으로 배웅을 가야 했고, 또다른 긴 3주간의 분리가 시작됐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현재에 온전히 머무는 일인 것 같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그려놓고 그것과 비교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주어진 것들에 집중하는 것.
그럴 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 같다. 조건이 없고, 계산이 없고, 바람이 없는 순수한 사랑.
물론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때, 사랑은 더 깊어진다.
그걸 이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