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냉철함과 따듯함이 공존하는 회사라는 공간
기업이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정의에서부터 규정하고 있다.
이윤 추구라는 것은 결국 냉철한 이성과 강력한 규율들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회사는 다분히 차가운 냉수, 기계와 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러나 거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냉철한 회사와는 별개로 서로에게 따듯함을 나눠주고 서로에게 기대어 큰 일을 해쳐 나간다. 어쩌면 냉철함으로 가득찬 회사이기에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좋은 동료와 따듯함을 더욱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동료애 때로는 전우애까지 느끼며 하루에 9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동료는 가족만큼이나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냉철함과 따듯함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때로는 한쪽에 무게가 쏠려서 균형을 잃는 일이 일어난다. 카카오에서 발생한 동료평가 사건이 바로 그렇다.
2. 카카오 동료평가 사건
2021년 카카오의 한 직원이 대하여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게시판에 유서를 암시하는 글을 썼다. 유서의 핵심 내용은 직장내 괴롭힘과 가혹한 동료평가 제도였다. 직장내 괴롭힘을 동료평가 제도를 통하여 감정을 담아 피드백을 했다는 것.
논란이 된 질문은
“이 동료와 다시 일하고 싶으신가요?” 였다.
해당 질문에 대하여는 네, 아니오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다. 다른 서술형 질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질문에서 1명이라도 ‘아니오’라는 답변을 받았다면 다른 서술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해당질문으로 예상할 수 있는 안 좋은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평소에 좋게 지내던 관계 사이에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를 싫어하고 있는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린치하는 상황, 경쟁자 간에 상호 안 좋은 평가를 줘서 더욱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 등등
사람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상황들이 떠오른다.
카카오가 이러한 나쁜 의도로 제도를 만들었을리는 없다. 아마도 카카오는 설문을 통하여 최고의 팀을 만드는데 필요한 인재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솔직한 피드백 문화를 통하여 건설적인 방향으로 인재들이 성장해나가길 바라면 설계를 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냉철함과 따듯함 중에서 냉철함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을 두기 위한 방향이었을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하여 ‘정’이라는 이색적인 요소가 마인드에 깔려있는 한국에서 냉철함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인 정서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토스에서도 완전한 솔직함을 토대로 동료 간의 진솔한 피드백을 장려하고 있다. 성장을 위하여 좋은 관점이기도 하지만 솔직함을 가장한 공격으로 변질될 리스크가 있으며 퇴사자 중 이러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왕왕 확인된다.
동료사이에서 완전한 솔직함과 냉철함은 동료 간의 신뢰와 유대감이 베이스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관계를 파괴하는 양날의 검이 된다.
3. 동료평가의 균형을 잡자!
앞선 사례를 통하여 우리는 동료평가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 도구가 아니라, 따듯한 신뢰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할 과제임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 팀은 따듯함을 기본 베이스를 두고 동료평가를 설계했다. 객관적인 데이터 확보라는 냉철한 목표와 함께 요소요소에 구성원의 성장을 돕고 관계를 보호하려는 따듯한 목표가 공존하도록 노력했다.
우선 우리는 '평가'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을 덜어내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의견 교환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명칭부터 '동료평가'가 아닌 '피어리뷰(Peer Review)'로 변경했고 아래와 같은 장치들을 제도에 반영했다.
1) 냉철한 요소들
중간없는 6점 척도: "보통이다"와 같은 안일한 중간 지점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를 통해 평가자가 자신의 의견을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데이터의 변별력을 높이고자 했다. 실제로 6점 척도로 바꾸자 전년도 보다 관대화 효과가 조금 완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 기반의 자유로운 평가자 선정: 평가자가 심리적 부담 없이 솔직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익명성을 보장했다. 동시에, 본인이 피드백을 주고 싶은 동료를 직접 선택하게 함으로써, 상호 간의 영향력과 관심도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다섯 가지 입체적 평가 항목: 인성/협조/업무태도/커뮤니케이션/업무수행능력 다섯 가지 구체적인 항목으로 평가 기준을 세분화했다. 이는 평가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모호한 인상 비평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개인의 역량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2) 따듯한 요소들
긍정 피드백 중심의 SBI 방식: 개선점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은 자칫 공격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우선 함께 일하며 좋았던 점에 대한 피드백에 집중했다. 특히 SBI(상황-행동-영향) 방식을 적용해 "A님은 늘 친절해요" 같은 막연한 칭찬이 아닌, "지난 OOO 프로젝트 때, 제가 A라는 부분에서 막혔을 때(상황), 먼저 다가와 구체적인 자료를 공유해주셔서(행동), 막막했던 문제를 해결하고 제시간에 업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영향)"와 같이 구체적인 사례 기반의 피드백을 유도했다.
수치가 아닌 3단계 결과 안내: 평가 결과를 0.1점 단위의 예민한 수치로 공개하는 대신, 개선 필요 / 충족 / 우수 3단계 형태로 단순화하여 전달했다. 이는 개인이 민감한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거시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기 위함이었다.
공격적 피드백 필터링 및 가이드라인: 익명성이 누군가를 향한 칼날이 되지 않도록, 인신공격이나 근거 없는 비방 등은 HR이 필터링했다. 수정을 한다는 것은 평가자의 의도에 벗어나는 행위이기도 하여 고민이 있었으나, 따듯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앞선 교훈에 따라 진행했다. 또한 평가 시작 전, '사람이 아닌 행동에 대해', '건설적인 의도로' 피드백해야 함을 명확히 안내하여 제도의 취지를 공유했으며, 리더의 경우에도 점수로 구성원을 나래비 세우지 않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피어리뷰는 구성원들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입체적인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동료들이 생각하는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팀워크를 저해하는 빌런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구체적인 긍정 피드백들은 구성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물론, 일부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구성원 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카카오 사례처럼 동료간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동료평가의 성패는 '팀워크'라는 대전제 아래, 냉철한 목표와 따듯한 배려를 모두 담아내는 섬세한 설계에 달려있다. 차갑게 다가가지 않아도 우리는 원하던 목적을 모두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