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CA 시대를 항해하는데 필요한 나침반과 엔진
1. VUCA 시대
바야흐로 불확실의 시대이다.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특성인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의 앞 글자를 따서 VUCA시대라는 꽤 멋진 단어를 만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길래 이렇게 VUCA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을까?
이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
이 그래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명, 소득, 풍요 등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지표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기원전 10세기에서부터 약 3천년에 가까운 시간의 변화보다 마지막 200~300년 정도의 변화가 압도적으로 도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자고 일어났는데 300년이 흘러 영조시대에 눈을 떴다고 가정하면 변화야 느끼겠지만 그렇게 큰 임팩트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영조가 300년 후인 1992년에 눈을 떠서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길에 자동차가 돌아다니며, 상자에서 그림이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영조가 겪을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이러한 속도의 변화는 200~300년 사이에 급격하게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더욱 빨라지고 있기도 하다.
약 20년간의 글로벌 시가총액 회사들의 변화이다. 전기, 에너지 회사들이 모두 사라지고 IT기업들이 시가총액 TOP5를 차지했다.
이제 100년단위의 수준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가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회사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상상도 못했던 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기도 한다.
10년전만 해도 우리는 이세돌이 AI에게 바둑으로 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AI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들어와 매시각 우리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게 빠른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이러한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에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나침반이 필요했다.
2. 디자인씽킹의 등장
VUCA시대 전 회사들은 문제 해결을 위하여 활용(Exploit) 중심의 사고를 했다.
활용중심의 사고란 기존에 갖고 있는 지식과 기반을 바탕으로 분석적, 논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이러한 사고는 안정적인 환경과 시대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였지만 앞서 말한 VUCA시대에 이르면서 기존의 지식과 자원만으로는 다양한 변수를 모두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문제해결방식이 탐구(Explore)중심의 사고이다.
탐구는 예측이 아닌 가설을 기반으로 한다. 탐구라는 말 그대로 상황에 뛰어들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실험해보고 학습을 하는 것이다.
문제를 사람이 느끼는 것이라는 본질 하에 파악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해결책을 가설로 세우고 빠르게 실행하고 학습을 반복하는 것
이러한 방식은 체계화한 것이 디자인씽킹이다.
디자인씽킹적 사고는 새로운 문제 해결에 유용한 해결책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활용 중심 사고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운영최적화와 시스템 운영에서 활용 중심적 사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은 신사업 발굴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과제에 대하여는 탐구중심의 사고방식, 생산/자원의 효율화와 같은 분야에는 활용중심의 사고를 병행할 수 있는 양손잡이형 경영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에 맥킨지, 딜로이트와 같은 활용중심의 컨설팅 회사에서 루나와 도브린이라는 탐구중심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매입한 사례들도 VUCA시대에 문제해결을 위하여는 탐구 중심 사고의 체계를 내재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디자인씽킹의 철학과 프로세스
양손잡이 경영의 한축, 즉 새로운 기회를 탐구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방법론이 바로 디자인 씽킹이다.
디자인씽킹은 탐구중심의 사고를 기반으로 한 3가지 철학을 5가지의 프로세스를 통하여 구현하고 있다.
1) 디자인씽킹의 철학
① 사람에 대한 깊은 공감
디자인씽킹은 탐구중심의 사고가 체계화된 것이기에 복잡한 문제를 탐구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이때 문제를 탐구하는 관점이 ‘사람’이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사람의 경험, 감정, 니즈는 단순히 설문조사로 확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직접 사용자 입장에서 관찰하고, 경험해보고 인터뷰를 하면서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악하려고 한다.
② 협업/시너지
디자인씽킹은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관점의 충돌은 전혀 생각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파생된다. 그렇기에 전문성의 수준, 직급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수평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이디어에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얹어서 변형하는 ideation 추구한다.
③ 빠른 실행과 학습
처음부터 완벽한 해결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전제하에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개선하려고 한다.
디자인씽킹을 대중화한 IDEO의 공동 설립자인 데이빗 캘리도 “완벽한 지성도 현명한 시도와 오류를 이길 수 없다”라고 하며 빠른 실행과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3가지 철학은 아래 5가지 프로세스를 통하여 실현된다.
2) 디자인씽킹 프로세스
① 공감하기(Empathize)
사람 중심의 철학이 반영된 공감하기는 문제를 사람을 통하여 파악한다. 문제를 파악할 대상자를 표준분포에 따라 선정하고 관찰 / 인터뷰 / 체험 활동을 통하여 대상자들의 생각을 파악한다.
상대방이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보고 듣는 것을 넘어서 문제에 대하여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관찰, 인터뷰, 체험 활동이 설계되어야 한다.
② 문제 정의하기(Define)
공감에서 얻어진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한다.
한국은 척하면 척하는 문화가 이어져 온 고맥락 사회이다. 사람과의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문제정의적 측면에서는 고맥락 의사소통의 습관이 걸림돌이 되고는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정리해버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견된다.
가령 ‘고객이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다’라는 상황에 대하여 고맥락 사회에서는 ‘밴드가 필요하다’로 문제가 정의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문제를 정의할 경우, 피를 멈추기 위하여 밴드라는 방법에 한정될 수 있다.
밴드가 없다면 '밴드를 사러간다', '옆집에서 빌려온다'와 같은 방안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피를 멈추어야 한다’로 문제를 정의한다면 밴드 외에도 구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도출할 수 있는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측면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를 문제 그대로 정의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반을 차지하는지도 모른다.
③ 아이디어 내기(ideate)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해결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이 제안하고 최적의 아이디어를 찾는다.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하여 브레인스토밍, 부츠캠프, 랜덤링크 등을 운영한다.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은 미루고 최대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발산시킨 뒤, 최적의 아이디어를 체크리스트, 우선순위 지도 등으로 개선아이디어를 수렴한다.
④ 프로토타입(Prototype)
디자인 씽킹에서는 아이디어를 머리로 구성하는 것을 넘어서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형태로 빠르게 만든다. 완성도 높은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가짜 결과물을 만든다.
⑤ 테스트하기(Test)
위에 만들어진 시제품을 실제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 단계는 아이디어를 '판매'하거나 '설득'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용자의 반응을 통해 배우고 개선점을 찾는 과정이다.
머리 속에서 구상을 통한 불편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제품과 고객을 통하여 개선점을 도출한다.
개선점이 도출되면 디자인씽킹은 다시 공감하기 단계로 돌아가서 5가지의 프로세스를 반복 수행한다.
빠른 실행과 학습의 반복과 순환을 통하여 문제해결의 최선책에 차츰 차츰 다가간다.
이렇게 디자인씽킹은 인간 중심의 철학을 바탕으로 공감-정의-아이디어-시제품-테스트라는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하여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디자인 씽킹은 문제해결이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나침반 삼아 끝없이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4. 디자인씽킹의 사례
패트리샤 무어는 26세였던 1979년 부터 3년간 80대 노인으로 변장해 일상생활을 체험했다.
흐릿한 안경, 귀마개, 관절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드는 보조기 등을 착용하고 생활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패트리샤 무어는 노인의 불편함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손아귀 힘이 약해 병뚜껑이나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어렵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경험과 통찰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계단을 오르기 힘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상버스의 디자인, 관절염이 있는 사람도 사용하기 편한 OXO 굿그립 주방용품 시리즈, 읽기 쉬운 약병라벨 등의 제품개발로 이어졌다.
또 다른 사례로는 디자인 씽킹을 세상에 널리 알린 IDEO의 ‘5일안에 쇼핑카트 재설계’ 프로젝트이다.
1999년,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은 5일 만에 쇼핑 카트를 혁신하라는 도전을 제기했다.
IDEO는 디자이너, 엔지니어, 심리학자 등으로 팀을 구성하여 마트로 달려가 쇼핑객과 직원을 관찰하고 인터뷰했다.
며칠간 수백 개의 아이디어를 내고, 스티로폼, 조립식 선반, 철사 등으로 즉석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테스트를 한 끝에 아이를 안전하게 태우고, 물건을 쉽게 꺼낼 수 있으며, 이동이 편리한 혁신적인 쇼핑 카트 모델(미래형 카트)을 만들어냈다.
아래 영상에서 IDEO의 더욱 자세히 확인할5일안에 쇼핑카트 재설계하는 디자인씽킹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gjz_o2318eQ?si=ZuSGFMgDi3iRZ-YH
국내기업 중 토스도 디자인씽킹적 공감요소로 문제를 정의했다.
고개들이 느꼈던 '금융은 어렵고 불편하다'라는 문제를 어떻게 빠르고 쉽게 금융처리를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재정의하고 빠르고 쉬우면서도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오류문제를 개선하면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러한 디자인씽킹의 철학을 단편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방법들을 고민하게 된다.
5. 디자인씽킹의 실무적 발전 : 애자일 스크럼 조직
이렇게 200~2010년대에 적극적으로 대중화가 되던 디자인씽킹은 철학과 프로세스를 넘어서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조직과 업무방식을 시스템화 되었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를 애자일 스크럼 조직이라고 부른다.
디자인 씽킹의 철학과 프로세스가 올바른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나침반이라고 한다면 애자일 스크럼 조직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엔진과 같다.
애자일 스크럼 조직은 디자인씽킹 프로세스를 크게 2단계로 나누어 운영한다.
1단계 : 공감하기-문제 정의하기-아이디어 내기
2단계 : 프로토타입-테스트(순환)으로 구분하여
1단계는 제품 책임자(PO)의 주무대이며, 2단계는 스크럼 마스터(SM)와 개발팀의 주무대이다. 디자인씽킹의 철학에 따라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인원들이 함께 문제해결에 참여해야 하므로 이는 역할의 비중차이일 뿐이다.
1단계에서 고객에게 필요한 문제에 대하여 해결하는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하여 제품 책임자가 주도하여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우선순위에 따라서 스크럼 마스터와 개발자는 문제해결 방향을 여러 단계의 스프린트로 쪼개서 가설-검증-학습을 반복하여 진행한다.
각 단계에서 1단계에 수립한 방향성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번 검토하며 2단계에서 방향성을 상실하지 않았는지를 매 시기마다 회고한다.
한국에서도 IT 기업들이 경제를 선도하면서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하여 애자일 스크럼 조직을 도입하고 있으나,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1) 과거 성공방식의 관성
첫번째는 한국에서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해왔던 ‘활용’중심의 사고방식에 아직도 얽매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활용 사고방식을 아주 잘 활용해왔다. 정확한 예측으로 실패를 최소화해야 하고 과정보다는 결과중심의 업무방식을 선호했다. 우리기업들은 수직적인 구조에서의 상명하복과 완벽주의에 빠르게 적응해왔고 이는 대한민국의 빠르고 효과적인 성장 시킨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관성이 오히려 현재는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활용방식으로 성공을 해왔던 경영진은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하여 수평적 조직 형태를 만들어놓고는 관성적으로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2) 철학이 부재한 모방
두번째로는 애자일 스크럼 조직의 철학과 프로세스의 근간이 디자인씽킹에 대한 이해 없이 조직의 구조, 프로세스만을 모방하였기 때문이다. 디자인씽킹의 철학이 없이 구조와 프로세스로는 초반이야 어느 정도 운영될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변질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디자인씽킹의 철학에 따르면 현업, 제품 책임자와 스크럼 마스터, 개발팀과의 수평적 협의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러나 차츰 업무과정의 효율을 중시하다 보면 이러한 부분에서 단절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문제에 대한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철학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사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인식해도 관성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최근에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 it계열의 상위권 회사들은 이러한 철학을 이해하고 스크럼 조직을 운영하면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결국 VUCA라는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은 갖춰야 할 것은 애자일이라는 엔진을 장착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알려주는 인간중심의 ‘나침반’ 디자인씽킹의 철학을 내재화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애자일 조직에서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지고 있다면 우리의 나침반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엔진이 신속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지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