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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놀이터의 웃음소리

벤치에 앉은 나. 시간 속으로

by 도로미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운전석 문을 열면

바로 놀이터가 보입니다.

알록달록 예쁜 미끄럼틀, 붉은색·초록색 그네까지.


하지만 그곳 벤치엔

늘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었습니다.

언제나 텅 비어 있었죠.

저에겐 늘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퇴근하고

운전석 문을 여는 순간,

텅 비어 있던 놀이터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에 이끌려

저는 조용히 벤치 하나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느새 저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미끄럼틀은 색이 벗겨져

시꺼먼 녹이 드러난 철판이었지만,

그 속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신나 보였습니다.


제 여동생은 끼익 끼익 소리 나는 그네를 타고 싶어

춘향이처럼 그네를 타는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한쪽에선 고무줄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꼭 쥔 채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부르며 고무줄을 타고 있더군요.


너무 신기했습니다.

평소엔 몸이 무거워

뛰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그 순간 제 몸은 공기처럼 가벼웠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놀이터 뒤편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 때까지

저는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청량한 웃음소리,

숨을 헐떡이며 노는 모습들.

너무도 오랜만에 마주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아이들이 안 보일까?”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옆집 신혼부부가

예쁜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게 참 행운입니다.


가끔 밤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복도식 아파트 1층,

10세대나 되는 이 공간에서

그 울음소리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기의 울음소리는 너무나 맑고 아름다웠거든요.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아가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청아할 수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과

오랜만에 제 할 일을 하고 있던 놀이터를 뒤로 하고

저는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건 단순한 퇴근이 아니라,

어린 시절로 다녀온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요즘, 동네 놀이터가 조용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울음소리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


그날처럼,

잠시라도 아이들이

맘껏 웃고, 울고, 뛰어놀 수 있는 풍경이

더 자주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뛰어노는 동네가,

진짜 사람이 살아 숨 쉬는 동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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