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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n 01. 2021

내가 미워하는 것

눈 좀 빌립시다.

가만히 보면 참 미운 것이 몇 있다.

그중에 하나는 병원 바로 옆에 붙은 장례식장.

물론 유족에게는 그런 편의가 절실하지만,

병원과 장례식장이 나란히 붙은 것은 죽은 사람

또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창 밖으로 매일 죽음을 상기해야 할 것까지는

없을 텐데, 그 무심함이 밉다.

-

또 하나는 새해에도 널려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만큼 게으른 것도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를 12월 초부터 주구장창 외치는데 1월 말까지도 널려있는 트리를 보면 새해를 시작하는 산뜻한 마음도 자꾸만

전년도로 돌아가는 것 같다.

12월 26일이면 트리를 치우는 나의 매정함도

칭찬할 것은 못되지만 어찌 됐든 1월 말에도 쇼핑몰 앞에 거대하게 서있는 트리는 정말 지겹다.

-

그리고 먼지 쌓인 조화.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그만큼 살아있는 것을 돌보고 그 아름다움을

유지시키는 것은 관심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필요하되 정성이

부족할 때 선택하는 것이 조화다.

하지만 조화의 먼지를 털어낼 여력조차 없어지면

아름답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생화 아닌 조화를, 조화 아닌 먼지를 택한 주인의 게으름을 두 번 세 번 확인시켜주는 꼴이 된다.

-

마지막으로, 가슴 부분만 칠이 벗겨진 여자 동상이다.

관광지에 가면 동상들이 많다.

남자 동상, 동물 동상, 알 수 없는 형상의 동상 등등

그런데 유독 여자 동상들에만 가슴 부분에 칠이

벗겨져 있거나 손을 많이 타서 번들번들 해 보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니

가만히 있는 여자 동상의 불룩 나온 가슴 한번

만져보자는 건지.

심지어 동상 가슴에 손을 얹고 이상한 모양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봤다.

그것을 만든 사람은 아는지, 가엾은 여자 동상은

어느 이름 모를 관광지에서 가슴이 벗겨진 채로

여럿에게 사진을 찍힌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추잡한 행동 좀 하지 말라며

소리를 꽥 지르고 싶지만 그냥 눈을 질끈 감을

뿐이다.

개인의 자유라는 큰 명분이 있으니.

우리 동네에도 여자 동상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안전하다.

좀 우습지만 나는 지나다닐 때마다 그것을 은근히 순찰한다.

-

세상에는 눈엣가시 같은 것이 참 많다.

다 빼어버릴 수 없으니 그냥 조용히 지나치는

수밖에 없는 건지.

하지만 내가 미워하는 것처럼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닌 삶이 걸린 문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것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의 안일함과 이기심

그리고 무지함이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네 눈의 눈엣가시를 자주 빌리고 싶다.

빌리고 빌려주다 깊고 넓은 서로의 눈이 되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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