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날에 성큼
24살의 첫사랑들을 만났다.
산수유 가녀린 꽃술이 축포처럼 터져 오른 띠띠미 마을
햇살은 바람을 따라 가지에서 여울지는데,
저쪽에서 걸어오는 배불뚝이 중년들
걸음도 느리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하다
바위만 한 뱃집을 앞세우고 낯설음이 오고 있다
둥글둥글한 얼굴엔 발그레한 수줍음이 물결져
수줍음이 흐르기는 나도 마찬가지
30년도 더 넘은 세월이 우리 사이를 걸어오고 있다.
선생님, 제 늦둥이 셋쨉니다. 흐흐.
엄마 아빠와 함께 먼 곳까지 온 여섯 살배기가 나를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예요? 한다.
순식간 작은 공처럼 통통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는다.
사방이 신기방기한 듯 쉴 새 없이 물어대는 이 귀염보숭이, 눈을 뗄 수가 없다.
산수유 꽃술처럼 온 얼굴로 웃는 이 늙은 아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눈부터 웃고 눈 끝에 오래 웃음이 남는다. 제 아이처럼 정말 산수유 노란 꽃술을 많이 닮았다.
장가 대신 직장과 사진으로 애인을 삼은 키 큰 늙은 아이는 카메라 가방을 짝으로 데려왔다. 터트리는 것 없이 씨익 미소를 짓고, 수줍으나 표현이 분명했던 이 친구는 여전히 당당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또, 눈이 유난히 맑아 하늘빛을 다 담아낼 것 같던 눈 큰 아이는 군수선박 배선감독을 하며 성실한 가장으로 욕심 없이 살아간다. 동글동글한 웃음이 여전히 주위를 편안하게 한다. 자녀들이 다 커서 이제 부모와 동행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모두 이 눈부신 날 자신의 세월을 데리고 와 조금은 부끄러워하며 조금은 느긋한 미소로 천천히 길을 걷는다.
꿈도 꾸지 않았던 이 시간이 꿈속 같다.
내 나이 24살, 그때 아이들은 14살.
성수를 이루었던 탄광업이 내리막길로 치달으며 이동과 사고가 많던 탄광촌 읍내. 학생들은 가난하고 불안정했다. 우리는 학교 도서관에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꿈을 꾸었다. 낡은 도서관 벽 족자에는 지금은 기억이 어렴풋해진, 김형석 님의 이런 에세이 글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 책 속에는 사랑이 있으며, 책 속에는 위대한 스승이 있고, 책 속에는 혁명이 있다.
우리는 그 글을 거울삼아 부지런히 모여들었다. 책을 열심히 읽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당시 이 글은 선생도 학생도 천방지축이던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그 뜨겁던 여름방학날 12명의 아이들과 함께 2박 3일 무전여행을 겁도 없이 떠났으니까.
하늘재를 걸어서 송계계곡에 닿고, 물소리를 퍼서 라면을 끓이며 목청껏 노래하고, 민박집에서 자고 난 다음날 또 걸어서 탄금대까지, 임진왜란 때 여기서 배수진을 치고 패한 신립 장군을 안타까워하며, 마침내 중원고구려비에 다다랐을 때의 그 감개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걸어서 중원까지 갔다 온 뒤, 우리의 시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내와 극복의 미래가 되었다.
열네 살이 꿈꾸던 먼 미래의 시간,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오늘이지만 장성한 시간의 강 너머를 보면 알 것도 같다. 첫사랑들이 뿌리내린 지난날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굳건하게 벼텨냈는지 그래서 이 뱃집과 웃음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떠한지. 마음이 뭉클하다.
쉰을 눈앞에 두고 세월을 성큼 건너와 우리는 다시 오늘, 새로이 젊은 한 장면을 찍는다.
오늘은 또 먼 어느 날의 그때가 되어 푸근한 옛사랑의 기억이 될 것이다.
소중한 하루가 산수유 바람결을 타고 먼 시간으로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