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어떠한 다짐

by 유한성


요즘은 틈만 나면 억지 웃음이라도 지으려 노력 중이다. 서울에서 사는 건 제법 정서적으로 건조한데 그에 동화되어 온세상 빈곤 다 끌어 안은 것 같은 얼굴을 한 나는 영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다.


크게 내세울 해외 경력은 없지만 그래도 어려서의 유학 생활과 토론토에서의 워홀 생활을 빗대어 고찰해보자면 서울에서의 삶은 못 견디게 냉혹한 편이기는 하다. 어째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짓는게 이다지 어려운 사회인가 생각해보았는데 그건 만만해보이면 약자로 보고 찍어누르려는 어떠한 사회적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아가 참견은 오지랖이라는 익숙한 문장도 한몫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감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떠한 것이든 과정보다는 결과 그리고 그 안에서도 과연 이성적이게 일처리 하나하나 잘했느냐 못했느냐로 판가름 나는 사회이기에 더욱 딱딱하게 변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착하면 호구다라는 말인데, 개념치 않는 것 같아도 실은 사람들 뇌리에 그게 콕콕 박혀있는지 당연한 배려나 친절에도 상당히 박한 면이 보인다. 그리고 마땅한 것에 사죄할 줄 모르는 상황도 간혹 존재한다. 이를테면 사람 붐비는 지하철에서 바삐 가다가도 사람을 쳤으면 그 순간만큼은 사과를 해야하는데 새침하게 고개 까닥이는 시늉하고 갈 길 간다던가(그마저도 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러 문을 잡아주었는데도 고맙다는 표시 하나 없다던가 하는 상황 말이다. 표현 한 번에 뭐가 크게 닳는다는 양 구는게 참 보기 싫은 건 사실이다. 더 충격적인 건 반대로 내가 실례를 한 경우에 사과를 하면 사람 무안하게 괜찮다는 말도 없이 쌩 지나가버리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건 악순환이다. 사과하면 제대로 받지 않으니 감정이 상하고, 그러면 할 필요도 없겠네 싶어지고, 그러다 실례를 해도 사과를 안 하고, 그러면 상대방은 불쾌해 하게 되는, 결론적으로 인간 혐오로 향하게 되는 궁극의 사이클.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러는 건 이해하는데 살짝 한발자국만 물러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걸 망각하고 사는 것 같다.

여하튼 이런 사회에 다시금 경직되어 동일한 표정을 짓고 누가 달려들어 도를 아십니까 물을까 거리 내에서 말 거는 모든 인간상을 없는 사람 셈 치고, 누군가 실수로 발을 밟으면 무슨 오물을 뒤집어 쓴 양 구는 나의 모습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영향을 안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는 나의 선택이니까.


찰나 지나가더라도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할머니가 힘겹게 박스 들고 계단 오르고 있으면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쁘게 갈 길 가다가도 지하철에서 노선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갈피를 못 잡는 외국인이 있으면 나서서 길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절하고 다정한 건 약한게 아니라 그거야말로 강하다는 걸 인증 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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