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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Oct 11. 2024

가을아침

산책길

   새 소리에 눈을 떠보니 창문 넘어 발갛게 태양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아! 가을이구나. 더운 여름 날씨를 탓하며 게으름을 피우던 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다. 나의 아침 루틴인 뜨거운 물 한잔을 들고 밖으로 나와 잠시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다. 화단에는 주황빛 메리골드와 국화꽃이 필 준비를 하며 꽃망울을 만들고 있고 코스코스는 하늘거리며 피어있다. 날아가는 새소리가 정겹다. 선선한 아침 날씨에 저절로 운동화를 신게 된다. 지난 주 폭우가 쏟아지고나서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몰아냈다. 들녘으로 나서니 산들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인지들판 너른 평야에는 노랗게 익은 벼들이 공손히 인사하고 있다. 그 비에도 끄덕없이 알곡을 지켜낸 대단한 벼들이다.


  논길따라 걷다보니 옆 수로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자국이 남아 있다. 논둑이 무너지고 넘어진 벼들도 보이고 마늘 심으려 갈아 놓은 밭은 고랑의 흙을 쓸고 내려가 다시 고랑을 만드는 농부의 트렉터소리가 분주하다. 지난 주 금요일 소나기 예보만 있었는데 퇴근길 고속도로는 끊임없이 비가 내렸고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는 폭우로 변해있었다. 간단한 저녁밥을 준비해서 내리는 비를 보며 늦은 저녁을 먹는데 동네 앞 천이 넘쳐서 곧 수확할 벼가 있는 논이 모내기를 한 듯 물이 넘실댔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침수된 벼를 걱정했던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물으  빠져있었고 다행히 벼들도 무사했다.


  어느 새 가을, 끼룩끼룩 철새떼 줄지어 날아가고 수로에 한가로이 노닐던 백로는 내 발자국소리에 놀라 느린 날개짓을 하며 날아간다. 우아한 날개짓이다. 여유롭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양팔을 벌려 백조가 된 듯 날개짓을 따라해본다. 포르르, 소리에 놀아 쳐다보니 먹이활동을 하던 작은 새떼들이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바삐 날아가는 모습이다. 백조의 날개짓과는 다르게 파닥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따라하다 빙그레 웃음이 난다.


  멀리 거너편 동쪽 하늘은 태양빛으로 붉게 물들어 곧 떠오를 해님을 암시한다. 그 빛을 쫓아 열심히 걷는다. 양쪽에는 황금물결 가득한 벼들이 가득하고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와 닿는다. 아버지는 벼가 익어갈 무렵이면 부지런히 논둑길을 다니셨다. 밤에 벼가 무사한지 쓰러지지 않았는지, 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그럴 수 박에 없는 것이 여덟식구의 ㅇ리 년 농사였으니 그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새삼 아버지의 수고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한참을 걷다보니 간월암 바다로 가는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넓은 천이 나온다. 안개가 자욱한 천을 따라 유유히 물이 흐르고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여유로움이 함께 흐른다. 양쪽 길가에는 키 작은 코스모스가 형형색색으로 피어있고 바람따라 이리저리 하늘거리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뒤돌아선다.


  다시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사이 태양은 떠올라 등 뒤를 따사롭게 비춘다. 한적한 시골길 따라 황금들판을 걷고 있노라니 부자가 된 듯 일렁이는 벼이삭의 물결이 끊임없이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동네의 집집마다 감나무에 주홍빛으로 물든 감이 익어가고 길가의 툭 떨어진 알밤을 몇 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낯선사람의 발자국에 멍멍 짖는 시고르브종의 소리를 들으며 기분좋은 가을 아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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